지난겨울 일이다. 코트 깃을 올리고 목도리를 코밑까지 친친 감고 걷는데, 차도에 길고양이 한마리가 죽어 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고양이다. 팔과 다리가 늘어져 있고, 작은 머리통이 아스팔트에 기대듯 기울어져 있다. 길 건너 미용실의 앞치마 두른 젊은 여자가 고양이 앞에 서 있다.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아마도 경찰이나 지구대에 쪽에 연락하는 것 같다. 작은 몸이 으깨지지 말라고, 여자는 차도에 내려서서 고양이 주변을 지키고 있다. 거리는 어둑하고, 내 손엔 남편에게 줄 초밥이 들려 있고, 아스팔트엔 혼곤한 잠에 빠진 듯 어린 고양이가 죽어 있다.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추위 속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숨 쉬던 것이 숨을 멈춘 것, 움직임을 멈춘 것, 몸에 깃든 시간을 멈춘 것. 걸음을 멈추고 고양이의 탈을 쓴 죽음을 한참 바라보았다. 울고 싶은데 울 수도 없는 저녁. 한겨울의 칼바람처럼, 세상이 네게 그랬겠구나, 어린 고양이야. 그날밤 장 그르니에(J. Grenier)의 『섬』(김화영 옮김, 민음사 2008)을 찾았다. 기막힌 산문집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그중 「고양이 물루」를 읽었다. 이렇게라도 죽은 고양이를 추모하고 싶었다.
“오후에는 침대 위에 가 엎드려서 앞발을 납죽이 뻗은 채 가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잔다. 어제는 흥청대며 한바탕 놀았으니 아침 일찍부터 내게 찾아와서 하루종일 이 방에 그냥 머물러 있을 것이다. 이때다 싶은지 여느 때 같지 않게 한결 정답게 굴어댄다. 피곤하다는 뜻이다―나는 그를 사랑한다. 물루는, 내가 잠을 깰 때마다 세계와 나 사이에 다시 살아나는 저 거리감을 없애준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다. 작가가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 설명하는 태도가 좋다. “물루는” 하고, 물루가 주어가 되는 문장을 읽을 때면 마치 건빵봉지에서 별사탕을 발견할 때처럼 마음이 환해진다.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늘 똑같은 농도의 슬픔이 도착한다. 죽은 이를 위해 떠다놓은 한그릇의 물처럼, 깊고 고요한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