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2층집으로 이사 오기 전, 오래 된 한옥에서 18년 가까이 살았다. 개 한 마리와 사람 한 명. 두 생명이 깃들어 살았지만 그 한옥에는 쥐가 많았다. 쥐들은 대문 아래 틈이 난 마당의 하수구를 통해 들고났다. 하수구 위에 물이 가득 담긴 들통을 올려놓고, 틈을 찾아 메워도 쥐가 자주 눈에 띄었고, 쥐들은 나를 침입자처럼 노려보곤 했다. 내가 벌벌 떨며 도움을 청하던 개는 종이 인형만큼이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고양이들도 이따금 지붕을 넘어 집으로 들어왔다. 그 녀석들도 노려보는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쥐와 고양이, 그 두 종은 야무져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 내가 사실은 물렁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비밀이 발각된 것처럼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개가 늙을수록 고양이들이 더 자주 마당에 나타났다. 어느새 몸이 삭정이처럼 되어버린 개도 그 무렵엔 나만큼이나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혼자 집에 있을 때 고양이에게 몇번 호되게 당했을 터였다. 그때부터 나는 한여름에도 방문을 꼭꼭 닫고 외출했고, 밖에선 나의 노견이 고양이발톱에 찍혀 완전히 실명할까봐 초조했다. 그즈음 그 집에서 쥐가 완전히 사라졌다.
17년 동안 같이 살던 개는 2012년 6월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그해 10월 9일, 처음 보는 만삭의 치즈태비가 몸을 풀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왔다. 녀석은 마당에 놓인 신발장 위에 올라앉아 뚫어져라 나를 바라봤다. 이미 산도가 열렸는지 녀석은 한마디로 이판사판으로 보였다. “아, 안돼....” 처음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그다음엔 가슴에서 저릿저릿한 이상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한 캣맘에게 전화로 자문을 구했다. 캣맘은 인간인 내가 아닌, 전적으로 고양이를 배려한 조언을 해주었지만, 뭘 몰랐던 나는 시키는 대로 하고 말았다. 그 고양이의 눈 아래엔 진노랑 털이 다크서클처럼 덮여 있어서 눈물에 푹 젖은 것처럼 보이는 한편, 몹시 지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