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의 '시가 어려운 당신에게' 20
아이가 큰 가방을 들고 버스에 오르는 걸 보면 아이와 늙은 여자는 적어도 얼마 동안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차창 안의 손바닥과 차창 밖의 손바닥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터미널에 부슬비까지 내리고 있어 더욱 시큰하기만 합니다.
터미널
큰 가방을 들고 훌쩍거리던 아이가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자
늙은 여자는 달려가 까치발을 하고
아이 앉은 쪽 차창에 젖은 손바닥을 댄다
버스 안의 아이도 손바닥을 댄다
횟집 수족관 문어처럼 달라붙은 하얀 손바닥들
부슬비 맞으며 떠나는 버스를
늙은 여자가 따라 뛰기 시작한다
손바닥에 붙은 손바닥이 떨어지질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