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의 '시가 어려운 당신에게' 38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묘하게 마음 편해지는 시입니다. 화난 일은 어느새 잦아들고 마음이 넉넉하고 넓어지는 그런 시. 연인 때문이건 선배 때문이건 남편 때문이건 직장상사 때문이건, 화가 치밀어오른다 싶을 때 이 시를 반복해 읽다보면 분한 마음이 한결 누그러질 것입니다.
접기로 한다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