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의 '시가 어려운 당신에게' 39
아, 함박눈이 온다고 꽃을 샀군요. 아아, 함박눈이 펑펑 오신다고 꽃을 꽂아주고 가는 동료도 꽃을 잠시 바라보는 시인도 환하고 행복해보입니다. 잠깐이 아니라면 꽃을 바라볼 시간조차 없을 테지만 주변에 이런 사람 하나 있다면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견딜 만할 것 같습니다. 제가 만일 저 자리 근처에 있었다면 꽃을 꽂아주고 가는 동료에게 ‘시를 한번 써보면 어떠실까요?’ 하고 넌지시 권해보았을 것 같기도 한데요. 꽃도 동료도 ‘하느님처럼’ 바라보게 되는 시의 힘입니다.
꽃은 불보다 세상을 더 넓게 비춘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얼굴이 말도 못하게 어여쁜
동료 직원 김은영 기자가
희고 노오란 꽃송이를 가져와
메마른 내 책상 위 화병에 꽂는다
(아, 불보다 더 환한 꽃송이
불보다 더 넓게 세상을 비추는 꽃송이!)
핏덩이와 자동차가 뒤범벅으로 굴러가는
도시의 겨울 거리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꽃을 하느님처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