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의 '시가 어려운 당신에게' 58
두어 해 전, 콩을 심었다가 고라니가 연한 콩 순만 골라 똑똑 따먹고 가는 통에 콩 농사를 아주 접어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병초 시인의 「콩 베기」를 읽다보니 그때 콩밭에서 마주친 고라니 눈빛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조금만 때를 놓쳐도 “빈 깎지”로 남을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사랑이든, 청춘이든. “반의반만 남았어도 고맙다”
콩 베기
콩들이 반 넘게 쏟아졌다
콩대 밑이 까맣다
이미 쏟아진 것들을 어쩌랴
반의반만 남았어도 고맙다
낫으로 조심조심 콩대를 베는데도
빈 깍지들 무색하게
주르르 쏟아지는 콩알들,
말도 못해보고 미리 쏟아져버린
내 청춘처럼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