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의 '시가 어려운 당신에게' 83
“햇빛은 찬란하고 나를 둘 데가 없다” 그대가 보는 것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구멍가게’이든, 골목길 가운데에 뜬 ‘낮달’이든, “눈 속 낭만을 뚫고 달리는 전철”이든, “시를 생각하느라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는 시인처럼, 무엇을 하기 위해 그대, 여기까지 왔는지 말해줘도 좋을 연말입니다.
대림동
구멍가게는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좁은 골목 한가운데 억지스런 낮달이 서성이고
집집마다 빨래 마르는 냄새가 하늘하늘
담벼락에 위태로이 올려둔 양동이에 고구마 순이 자라고 있었다
사오년 전 내가 살던 곳
눈 속 낭만을 뚫고 달리는 전철을 올려다봤는데
그때 옆에 있던 누구에게 낮게 무어라 속삭였던 것도 같아 그때를 보려고 불을 켰는데
햇빛은 찬란하고 나를 둘 데가 없다
시를 생각하느라 여기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