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의 '시가 어려운 당신에게' 94
그게, 사랑이었나? 이미 왔는데도 사랑이 온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사랑이 아주 멀어져갈 즈음에야 알아채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기회를 놓쳤어! 간만에 온 기회를 아주 놓치고 나서야 막막한 후회의 나날을 보내기도 하는데요. 유안진 시인이 담담하게, 그러나 젖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말이 “비 가는 소리”처럼 온몸으로 스며듭니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비 가는 소리
비 가는 소리에 잠 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 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音程)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다보는 실루엣, 수묵으로 번지는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 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