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의 '시가 어려운 당신에게' 118
“당분간/ 슬픈 시는 쓰지 않을게” 아침저녁으로 바뀐 공기가 유쾌하면서도 쓸쓸하게 느껴지는 구월인데요. 여름과는 달리 내보내려던 말과 드러내려던 마음을 자꾸, 안쪽으로 들이게 됩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말수가 줄어들고 생각은 많아지기 시작하는 초가을. 잊고 있던 나만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조금은 더 밝고 환하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끊겨버린/ 노래의 뒷부분이 생각났다”
구월
당분간
슬픈 시는 쓰지 않을게
영혼을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을게
액자 안의 그림이 무엇이었는지
말하지 않을게
밝은 것을 견디지 못하던 사람이
어두운 것을 견디게 될 때
커다란 양초와 과자 상자
챙이 넓은 모자를 들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게
최초의 미로를 만들었던 사람이
혼자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고 쓰지 않을게
밖에 오래 서 있다
그러다 돌연히
다짐했던 말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다고
계속 믿고 있었지
정말 아닐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갑자기 끊겨버린
노래의 뒷부분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