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의 '시가 어려운 당신에게' 14
버려진 종이 더미 위로 비가 치고 있습니다. 수많은 글씨가 폭우에 젖어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단 하나 ‘사랑’이라는 글씨만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시인이 끝까지 놓치지 않고 싶은 게 ‘사랑’은 아니었을까요. 세상은 내가 보려고 하는 것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줄 테니까요.
폐지(廢紙)
어느 산 밑
허물어진 폐지 더미에 비 내린다
폐지에 적힌 수많은 글씨들
폭우에 젖어 사라진다
그러나 오직 단 하나
사랑이라는 글씨만은 모두
비에 젖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