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네루다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아직 내 안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지요. ‘우리 안의 시인은 스물한살에 죽고, 혁명가와 로큰롤 가수는 스물네살에 죽는다.’ 책을 읽다 이런 구절들을 마주할 때면 한없이 씁쓸해집니다. 탁자엔 여행책자 대신 온갖 영수증과 보험 서류들이 쌓여가고, 날마다 거울은 시간에 마모된 낯선 얼굴을 보여주지만,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꺼내드는 책입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은 대문호 릴케(R. M. Rilke)와 시인 지망생 청년 ‘카프스’가 주고받은 열통의 서신을 담고 있지요. 세상을 향한 반짝이는 눈을 지녔으나 모든 것에 서툰 카프스는 자신에게 시인의 자질이 있는지, 시인이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질문합니다. 그런 그에게 릴케는 애정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지요. 그런데 이 애정이 언제나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당신의 시에는 개성 있는 스타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개성 있는 것으로 발전할 소질을 지닌 조용한 숨겨진 싹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혹독한 말들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당근보다는 채찍이 훨씬 많아서 때론 그 냉정함이 무서울 때도 있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깊고 가혹한 말들이 전해주는 진정한 위로를.
당신의 시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스물한살에 죽은 당신의 시인을, 당신 안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던 혁명가와 로큰롤 가수를 되찾고 싶으시다면 모두가 잠든 밤, 이 책을 읽어보십시오.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그 하나하나마다 새로운 시작이며 시작 자체는 늘 아름다운 것이기에 그 하나하나가 신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당신은 왜 알지 못하나요?” 이런 관록의 문장들에 실려 정신없이 출렁이다보면 이 편지가 바로 당신을 위해 쓰였음을 알게 될 겁니다. 어느 누구도 아닌 당신의, 새로운 시작과 빛나는 사랑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