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만약을 상상했다. 만약의 수를 셈해보는 일이 무색할 만큼, 내가 떠올린 모든 생각은 ‘그때 병원에 가지 않았더라면’이었다.
집은 천장이 높고 한 면 전체가 유리창이라 여름에 유난히 더웠다. 그 여름 내내 나나의 분홍색 아랫배에는 작고 동근 상처가 있었다. 나나가 그 부위를 핥아서 상처가 덧나기도 하고 조금 커지기도 했다. 느낌을 따라야 했다. 왜인지 병원에 가기가 꺼려져 나나에게 상처를 핥지 못하게 하는 ‘칼라’를 씌우고 연고도 바르며 여름을 보냈다. 그러다 가을이 되어도 상처가 사라지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애매하다고 말하더니 그래도 확실한 게 좋겠죠,라고 묻고는 바로 주사기를 준비했다. 내가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나나는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그 밤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나나는 집에 돌아와 사료를 먹었다. 얼마 뒤 구토했고 먹은 것을 전부 게워낸 뒤에도 세 차례 더 토했다. 식욕을 잃었다. 사료를 포함해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모두 거부했다. 병원에서는 유문부가 제대로 활동하지 않아 위 안에 있는 내용물이 장 쪽으로 이동하다가도 역류해 정체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나는 일주일 넘게 입원하며 치료받았다. 매일같이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위액을 빼냈지만 치료는커녕 식욕도 돌아오지 않았다. 내 앞에서 참치를 먹는 모습에 집으로 데려왔지만 약에 취해 멍했고 밤이면 아파서 울었다. 좋아하는 담요를 깔아주고 캣닢 장난감을 놓아두고 마사지도 해주었지만 고통 앞에서는 일상의 애호가 아무 소용없었다. 그저 아파하는 나나를 보듬고 옆에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여러 병원을 돌며 많은 검사를 받았고 약 처방도 여러번 바꾸었다. 그사이 우리는 아픈 생활에 익숙해졌다. 나나는 한동안 괜찮았다가 한동안은 괜찮지 않았다.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자주 실패했다. 나쁜 일이 왜 생기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없이 왜,라고 물었다. 반면 나나는 단단했다. 그 모습이 때로는 처연했다. 내게 여전히 나나는 아픈 고양이가 아니었다.
한 고비를 넘기고 세달 뒤. 미뤄둔 정기검진을 받으려고 병원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나는 나빠지기 시작했다. 나나는 아주 빠르게 작아졌다. 내 눈에는 여전히 예쁘고 아기 같은데 사진으로 보면 병색이 완연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 말을 듣지 않았다. 내 눈을, 마음을 믿었다. 매일 약을 먹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더라도 적당한 몸으로 오래 함께할 거라고. 마중도 나오지 않고 옷장 앞이나 냉장고 앞 같은 이상한 자리에 빈 눈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도 그렇게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