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직접 만나는 걸 두려워하는 어른이 늘고 있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메일이나 문자 메시지가 편하다는 것이다. 문자 한통 80바이트 안에 많은 정보를 담아서 보내야 돈을 아낄 수 있던 무렵에 생긴 ‘말 짧아지기’의 경향은 이제 전송 환경과 관계없이 디지털 대화의 특성이 됐다. 특히 동사와 형용사를 사용하는 일이 줄어들었고 “점심 뭐 먹을 거야?”라고 물으면 “짜장”이라고 하는, 가리키는 대상만 툭 답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속도감은 있으나 이런 무뚝뚝한 대화 환경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은 점점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잘 모르게 된다.
이런 때에 예의 바르고 정확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상냥한 대화의 모델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책이 나왔다.
박성우 시인이 글을 쓰고 김효은 작가가 그림을 그린 『아홉 살 함께 사전』(창비 2018)은 전작 『아홉 살 마음 사전』에 이어서 배려가 담긴 따뜻한 대화의 사례를 담고 있는 책이다. ‘겨루다’ ‘다투다’ ‘부추기다’ ‘비꼬다’ ‘우기다’처럼 갈등과 충돌의 순간에 사용하는 말, ‘달래다’ ‘들어주다’ ‘부축하다’처럼 누군가를 돕고 마음을 풀어줄 때 쓰는 말, ‘사과하다’ ‘인정하다’ ‘털어놓다’처럼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정직한 태도를 가질 때 쓰는 말 등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관계에 대한 단어 80개를 다룬다. 단순히 낱말 뜻을 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하고 문학적인 용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전 이상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며 어린이가 읽기 좋은 상황들로 구성돼 있으나 어른들에게도 큰 깨달음을 주는 장면이 가득하다.
머리 모양이 도토리와 마른미역을 닮은 사랑스러운 주인공들은 학교에서 집에서 골목에서 책 속 80개의 서술어를 활용해 생생한 대화를 나눈다. ‘숨겨’ 편에서는 망가뜨린 배드민턴 채를 숨기기도 하지만 떨리는 마음을 숨기기도 하고 ‘샘내’ 편에서는 매번 칭찬받는 친구가 한번쯤은 지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고백한다. 정확한 표현은 정직함과도 통한다는 것을 책 읽는 동안 느낄 수 있다.
요즘 ‘사과해’를 실천해야 하는 어른들이 많다. 이 책에서는 ‘사과해’를 이렇게 설명한다. ‘친구에게 나쁜 말 했던 일을 잘못했다고 말하기’, 그리고 ‘다시는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기’. 어떤 변명도 붙이지 않는다.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늘 배울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