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나 방금 꿈에 꽃냥이가 나왔어. 나랑 신나게 뛰어놀다가 내 품에 쏙 안겼다.”
아내가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나는 이내 목이 콱 메였다.
‘아, 꽃냥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나보다.’
오랜만에 건강한 꽃냥이를 봐서 신이 난 아내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떠나기 전 사랑하는 사람들 꿈에 찾아온다고.
조금 뒤 아침을 먹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장모님이었다. 꽃냥이는 그날 아침, 장모님 품에서 편안한 얼굴로 떠났다고 했다. 목이 타는 듯한 고통에 물그릇만 보이면 얼굴을 처박은 지 일주일쯤 되던 날이었다.
1년 반 전 결혼을 준비하며 와이프가 기르던 꽃냥이의 거취문제로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당연히 우리와 함께 살 계획이었지만 내가 꽃냥이와 함께 있을 때 알러지 반응이 너무 심했다. (고양이를 진료하는 수의사이지만, 꽃냥이에게는 알러지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지만 말이다.) 꽃냥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십분만 되어도 나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결국 꽃냥이는 대전 처가댁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아내와 연애를 막 시작하던 시기에 꽃냥이가 혈뇨를 봐서 한밤중에 검사를 진행했었다. 조금 과체중이라고만 생각했던 꽃냥이의 몸 안은 생각보다 많이 망가져 있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신장도 온전치 못했다. 일반적으로 짧으면 수개월, 길어도 일년을 넘기기는 힘들어 보였다. 사람으로 북적이는 강남역 카페에서 아내가 펑펑 울었다. 그래도 기적처럼 꽃냥이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수의사답지 못한 첨언이었지만, 그래서인지 꽃냥이는 예상보다 2년이나 더 살아주었다.
7년 전 한겨울 길에서 아내를 꾀어내 가족이 된 이 고양이는 여러 해 사람들 곁에 머물며 웃음과 눈물을 몽땅 다 훔쳐 다시 겨울에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