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이십대 후반의 공시생입니다. 공부하느라 친구들을 거의 못 만나고 있는데요. 얼마 전 외국에 살고 있는 절친한 친구가 왔어요. 하도 오랜만이라 저도 마음 같아서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만나서 놀고 수다도 떨고 싶었지만, 서로 시간도 맞지 않고 저 또한 시간을 오래 내지 못해서 겨우 식사 한 끼를 한 게 다였어요. 친구는 안 그런 척했지만 내심 할 말도 많고 같이 놀러도 가고 싶었을 텐데 저를 배려한다고 군말 없이 이해해주려는 게 보여서 많이 미안했어요. 친구는 곧 떠날 시간이 다가오는데요. 그 친구를 위해 작은 선물과 편지, 그리고 친구가 평소 시 읽는 걸 좋아해서 시 한 편을 함께 써서 선물로 주고 싶은데요. 음, 고마운 마음? 그런 내용의 시도 좋을 거 같은데 어떤 시를 줘야 좋을지 한참을 고민하다 사연을 올려봅니다.
처방시
장마 지면 정미네 집으로 놀러 가고 싶다 정미네 가서 밍크이불을 덮고 손톱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고 싶다 김치전을 부쳐 쟁반에 놓고 손으로 찢어 먹고 싶다
새로 온 교생은 뻐드렁니에 편애가 심하고 희정이는 한뼘도 안되는 치마를 입는다고 흉도 볼 것이다 말 없는 정미는 응 그래, 싱겁게 웃기만 할 것이다
나는 들여놓은 운동화가 젖는 줄도 모르고 집에 갈 생각도 않는다 빗물 튀는 마루 밑에서 강아지도 비린내를 풍기며 떨 것이다
불어난 흙탕물이 다리를 넘쳐나도 제비집처럼 아늑한 그 방, 먹성 좋은 정미는 엄마 제사 지내고 남은 산자며 약과를 내올 것이다
처방전
미스터리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는 게 아니겠습니다. 왜 그러니, 물었더니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친구에게 까불지 말고, 아침에는 슬픔에게 자리를 양보해선 안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친구가 말갛게 웃는 게 보기 좋았죠. 이번에는 친구의 웃는 얼굴을 제가 물끄러미 보았습니다. 갑자기 슬픈 기분이 되었습니다. 친구는 왜 아침부터 슬픈 생각에 빠졌던 걸까. 제가 그만 슬픔에게 자리를 양보해주고 말았던 겁니다. 우정이란 그의 집에 찾아온 슬픔을 내 집으로 불러들이는 거군요. 또한 우정이란 내 집으로 찾아온 기쁨을 그의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우정을 쌓는 일이란 기쁨의 모래성을 짓는 일이 아니라 슬픔의 모래성을 짓는 일. 기쁨의 파도가 밀려오면 자연히 스르륵 무너져버리고 마는 것을요. 기쁨의 파도만이 철썩이는 텅 빈 해변보다는 두 사람의 분주한 손장난으로 세워졌다 무너졌다 하는 우정의 풍경이 훨씬 더 풍요롭습니다. 우정은 기쁨의 산물이 아니라 슬픔의 특산물일 겁니다. 저의 친구는 오늘 아침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와 슬픔과 기쁨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심사였겠지요. 어서 내 슬픔의 모래성을 허물어다오.
며칠 전에는 멀리 떨어져 이국에 있는 친구에게 한밤 띄엄띄엄 네 번씩이나 전화를 걸게 되었습니다. 제 편에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미스터리했습니다. 노래를 듣다가 그랬습니다. 제가 친구에게 권해준 노래가 나와서 발신, 친구가 제게 권해준 노래가 나와서 발신, 친구와 제가 자주 함께 따라부르던 노래가 나와서 발신, 친구와 제가 모두 좋아하지만 친구보다는 제가 조금 더 잘 부를 자신이 있는 노래가 나와서 발신하였습니다. 다음날 저는 요란한 짓을 벌였어,라고 기억했고요 친구는 덕분에 기쁨 밤이었어,라고 기억했습니다. 우정은 발신과 수신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군요. 우정은 지금, 여기에서 당장 흥이 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미래에서 과거형의 문장으로 흥을 완성하기도 하는 겁니다. 그런 이유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수다는 늘 시간을 폴짝폴짝 뛰어넘지요. 이상해. 시간이 벌써 이만큼이나 지났어.
‘우정’이라는 말을 사유하기도 전에 서둘러 우정을 시작하던 우리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우정에는 아직 숙맥인 이들이 우정을 쌓고 싶다고 말하기 쑥스러워 내뱉는 말들은 참 구체적이고 간략하지요. 가령, 같이 시험공부 할래, 핫도그에 케첩만 발라, 케첩과 설탕을 같이 발라? 우정을 시작하는 말이 있다면 우정의 눈매를 깊숙하게 하는 말들도 있겠지요. 가령, 말하지 않아도 네가 나를 이해해주는 게 보인다, 너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 같은 말이 그렇습니다. 네, 강신* 님과 친구 분은 이미 우정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슬픔을 쓰다듬을 줄 알고,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려고 애씀으로써 두 사람은 이미 “아늑한 방”입니다. 우정은 방이로군요.
어느새 깊어져 더는 우정이라는 말을 되돌아볼 필요도 없어진 사이가 된 친구에게 저라면 이런 단순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너희 집에 놀러 가고 싶다.’
미스터리합니다. 친구와는 뭐가 그렇게 하고 싶고 해야 할 게 무궁무진한 걸까요. 곧 두 사람에게도 찾아가게 될 겁니다. 그때 시험준비 하느라 제대로 못 놀았으니까 이번에는 확실히 놀자. 놀러 와,라는 우정의 대화목록이요. 그러고 보면 사랑보단 우정이 진심으로 검은 머리 파뿌리까지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