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두근거리는 마음은 아파도
이젠 그대를 몰라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이문세 「사랑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흔히 좋은 가사에 대해 시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적이란 말처럼 또 모호한 말이 없다. 무엇이 시적인 것일까. 이 거대한 질문에 소신을 가지고 답을 하자면, 시적인 것의 바탕에는 사실이 있다! 좋은 노래 가사는 뼈저리게 사실적이다. 우리를 진정 놀라게 하는 것은 우리가 지어낸 환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대로 변하지 않는 완강한 사실들이다. 십년 전 인연을 우연한 자리에서 만나 데면데면 굴었던 적이 있다. 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그렇게 감쪽같이 식어버렸다는 사실을 후에 알아채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정말 그 사람과의 일들에 완벽히 무심해졌던 것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 더 이상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와 관련한 기억의 열기는 맥없이 사그라져있었다. 그 사실이 뼈저리게 억울했다. 나는 목이 메이는 사람처럼 찬술만 벌컥벌컥 마셔댔다. 거짓말처럼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식을 수 있는 것인지. 하지만 그 거짓말은 내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사실이고 진실이었다.
시인 이상은 사람의 마음에 숨은 미로를 잘 발견한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가 외면한 막다른 심정의 골목들을 지면 위에 차갑게 그렸다. 그가 쓴 「이런 시」란 작품의 앞부분은 이렇다. 시의 화자는 건물을 짓느라 땅을 파는 현장을 지나다 거기에서 커다란 돌이 발견되는 것을 본다. 그런데 화자에게 그 돌은 누군가의 얼굴을 닮은 듯 보인다. 그리고 그는 무엇에 홀린 듯 그 돌이 버려지는 곳까지 따라가본다. 인부들이 그 돌을 큰 길가에 버려두고 가자 그 모습을 본 화자는 돌이 위험한 곳에 놓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는 돌의 안전을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마치 복수하듯 그 돌을 위험한 곳에 버려두고 그곳을 떠날 뿐이다.
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날 화자는 그 돌의 안위를 궁금히 여기며 돌이 버려진 자리에 다시 가본다. 희한하게도 그 돌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다. 화자는 누군가 그 돌을 업어간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이상한 글을 적는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라.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 이상 「이런 시」
우리가 경험하는 막다른 심정의 골목에는 늘 고귀하고 올바른 감정만 숨어있지 않다. 거기에는 우리를 닮은 비뚤어진 마음의 표정 또한 자리한다. 나를 버리고 가신 님, 그래도 평생 아끼며 그리워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그 님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다. 시인은 사실이 아닌 말들로 채워진 지면을 찢어버리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