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지칠 대로 지쳤다. 매사에 평소보다 훨씬 힘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 어떤 일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를 향해 꾀병이나 엄살이라고 말했고 또다른 누군가는 내가 지금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상태라고 평가했다. 혼자서 훌쩍 여행을 다녀오라는 사람도 있었고 그럴 때일수록 적극적으로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좋다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이상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아서 전화기를 꺼두었다. 문득 책장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 자신을 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먼지 쌓인 책들을 하나하나 닦고 책장에 꽂는 작업은 힘이 들면서도 힘이 생기는 기이한 일이었다. 내가 이런 책을 샀었나? 나는 이 책을 정말 좋아해서 세권이나 샀구나. 이 작가가 쓴 책은 유독 접힌 데가 많구나. 혼잣말을 하며 책정리를 하다보니 금세 하루가 갔다.
한숨 돌리려고 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아 있는데, 책 한권이 책장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비뚜름하게 꽂혀 있었던 모양이었다. 도종환 시인이 쓴 산문집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난다 2017)였다. 내가 이런 책을 샀었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첫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었다. “아무리 나무가 욕심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사람처럼 탐욕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리 나무들이 어리석다 할지라도 사람들처럼 어리석지는 않을 겁니다.”
숲에 들어서자 나는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지나치게 탐하는 마음이 나를 어리석게 하고 내 몸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탐욕을 덜어내고 그 빈자리를 호기심으로 우거지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판된 이 책이 올해 초에 다시 나왔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옷도 갈아입었다. ‘이 숲’을 건너면 봄에 당도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어 나는 책을 힘차게 펼쳤다. 숲이 법석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