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녹색평론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으레 찾게 되는 우동집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몸살 기운이 느껴지거나 감기에 걸렸을 때마다 가는 동네의 작은 병원도 있습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일들이 몸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은 딛는 마음, 마음마다 폐허 같을 때 펼쳐보는 책입니다. 제목만 얼핏 보면 기독교와 신에 대한 이야기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현실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창비
얼마 전 서랍을 정리하다가 한 책자를 발견했습니다. 이 책자는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배달음식점들을 소개하는 쿠폰북이었습니다. 음식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고 페이지 끝에는 음료수 무료나 이천원 할인 같은 쿠폰이 인쇄되어 있는. 10년쯤 전 발행된 그 책자를 생각없이 펼쳐보았는데요.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수사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웰빙 짜장면’, ‘힐링의 맛’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었습니다. 말에도 유통기한이 있어서 ‘웰빙’, ‘힐링’ 같은 말처럼 우리가 너무 많이 사용했던 말은 일찍 그 기한이 다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연장의 생각에서 어떤 시를 두고 ‘감동적이다’ 혹은 ‘따뜻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주저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김용택 시인의 『울고 들어온 너에게』를 두고서라면 여전히 ‘감동적이고 따뜻한 시’라는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시인의 시는 정말 감동적이고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최승자 역, 까치
제가 잘 따르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선생님의 연구실 문은 늘 열려 있었고 저는 자주 그 연구실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습니다. 종종 친구들은 제게 물었습니다.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길래 매번 그렇게 오래 있다가 나오냐고요. 저는 별 말을 하지 않는다고 답을 했지만 친구들을 믿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연구실에 들어서서 인사를 드리고 나면 딱히 할 말이 없었거든요. 이후로는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만 저는 그 침묵이 싫지 않았습니다. 침묵 속에서 저는 서가에 꽂힌 책을 꺼내 읽었고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거나 누구인가에게 보낼 편지를 적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러다 제게 몇 마디 말을 건네시고는 다시 침묵을 이어나갔고요. 그때 저는 침묵도 부드럽고 다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침묵은 말보다 더 힘이 세다는 것, 더 소란하다는 것. 그리고 침묵은 고독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창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 받은 책입니다. 그 친구는 이 책과 더불어 역시 W. G. 제발트가 쓴 『아우스터리츠』(을유문화사 2009)를 제게 주었습니다. 저는 『아우스터리츠』만 읽고 『토성의 고리』는 읽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당분간은 읽지 않을 것입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동물들이 먹이를 땅에 묻어두듯 잘 두었다가 겨울 같은 날이 찾아왔을 때 읽을 생각입니다.
『인연』 피천득, 민음사
열세 살쯤 처음 『인연』을 읽었습니다. 덕분에 ‘오월’을 좋아했고 ‘찬물로 세수를’ 자주 했습니다. 언제인가 꼭 비원에 가 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피천득 선생처럼 이른 나이에 엄마를 잃은 아버지의 유년 이야기를 지겨워하는 내색 없이 잘 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다시 『인연』을 읽습니다. 언제 만나도 반갑고 좋은 것이 인연일 것입니다. 책이든, 사람이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제주편』 유홍준, 창비
낯선 곳을 여행할 때, 반드시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주만큼은 조금 다를 것입니다. 자연과 생존, 4.3으로 대표되는 국가의 폭력, 이중 억압에 시달려온 제주의 여성사 등은 지금도 여전히 제주 곳곳에서 유효한 것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아픈 역사들을 위로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유홍준 선생의 우주적 입담도 더불어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