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서쪽의 자그마한 섬, 교동도. 이곳에서는 가장 번화한 대룡시장이지만 웬만한 시골장터보다 작은 규모다. 100m 남짓한 골목 두개가 이어진 것이 전부여서 사거리 길목에 서서 허무하다는 듯 “이게 다야?” 물음을 던지는 여행자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조금만 걸음을 늦추고 낡은 간판과 허물어진 슬레이트 지붕, 먼지 쌓인 벽시계, 백발성성한 약방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눈과 귀를 열면 교동도가 지나온 시간들이 느리고 길게 드러난다.
시장을 둘러보다 달콤한 군고구마 냄새에 이끌려 찾아간 곳이 ‘교동다방’이었다.
홀로 찾아온 손님에게 살갑게 말을 붙이던 마담 아주머니는 달짝지근한 다방커피를 타는 솜씨도 일품이다.
멀리 전라도에서 시집온 언니를 따라 이곳에 터전을 잡은 그녀는, 배를 타고 오가는 섬생활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마을사람들의 속 깊은 인심에 정을 붙이고 지금껏 교동도를 고향 삼아 지내고 있단다.
한참 수다가 이어지다 난롯가에 앉은 등산복 차림의 중년 사내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을 발견한 그녀는 얼른 다가가 소파를 서너개 붙여 누울 자리를 마련해준다. 사내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다가 못 이기는 척 몸을 뉘이더니 금세 코까지 골며 단잠에 빠진다. 어느새 교동도를 닮은 마담의 마음씀씀이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사내에게 자그마한 담요까지 덮어주고는 내게 한겨울 별미라며 난로 위에서 노릇하게 구운 감귤을 건넨다. 뜨끈하게 익은 껍질을 벗겨 입에 넣으니 부드러운 과육이 부서지며 상큼한 맛을 낸다. 다방 한쪽 벽면엔 서울서 다녀갔다는 어느 여행자가 적은 ‘교동다방 오십년사’란 제목의 시구가 붙어 있다. “주인은 인수한 지 십년이라 하지만 타객(他客)은 추억이 그리워 생긴 지 오십년이라 우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