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안 낼래.” 까페에서 작업을 하다가 옆자리에서 하는 말이 들려왔다. 한 청년이 아이스커피 잔을 테이블 위에 힘차게 내려놓았다. 잔이 테이블과 부딪는 소리는 컸지만 정작 청년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내지 않는다는 것은 이력서인 듯했다. “부모님은 내가 노력을 안해서 그런대. 하긴 요즘에는 도리어 내 눈치를 보시더라.” 청년은 말끝에 희미하게 웃었지만 이미 분위기는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았다. 둘 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한숨소리만 들려왔다.
작업에 집중하려 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고 있었다. ‘노오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가 이내 ‘헬조선’에까지 생각이 가닿았다. “아무래도 나한테 문제가 있나봐.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는 걸 보면.” 청년과 마주앉아 있던 또 다른 청년이 무겁게 말을 꺼냈다. “내일 발표가 한군데 나는데, 진작 마음은 비운 상태야. 이번에 안되면 편의점 알바라도 뛰어야 할까봐.”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이렇게 우리는 고갈되어 간다. 고갈되어 가면서도 탓할 수 있는 것이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 그것이 우리를 끊임없이 우울로 밀어넣는다.” 그때 나는 엄기호의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창비 2016)를 읽는 중이었다. 책 속 문장을 까페에서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느낌이었다. 누구보다 생기가 넘쳐야 할 청년들의 표정에는 근심과 우울만 가득했다. 인간의 존엄이 점점 희미해지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그 청년들처럼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리셋을 낳은 분노와 리셋이 낳은 무기력으로 힘이 쫙쫙 빠졌다.
그런데 이 기분은 책을 덮을 즈음 180도로 바뀌었다. 나는 리셋 상태에서 오히려 희망의 물줄기를 발견했다. ‘이후’를 꿈꾼다는 것이 희망일 수 있다. “나는 세상을 리셋(reset)하고 싶습니다”는 어쩌면 “나는 세상을 리멤버(remember)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온전히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부하가 걸린 머리를 비울 필요가 있다. 비우는 작업은 역설적으로 ‘다시’ 채우겠다는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야 다음이 있다.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