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3인칭으로 칭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린아이들이 자신을 3인칭으로 칭하며 무언가를 요구할 때는 귀엽게 보이지만, 성인이 그런 말투를 사용하다간 주변의 질책을 받게 마련이다. 정치인들이 자신을 믿어달라고 읍소하며 스스로를 3인칭으로 칭할 때는 그것이 다분히 연극적이라고 느껴졌다. 이름을 드러내며 이름 뒤로 숨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작년 겨울, 광주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당일 출장이어서 종일 정신이 없었다. 금남로를 지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주위를 둘러보다 일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정기적으로 촛불집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시계를 보니 서울로 떠나는 버스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무리에 섞여들었다.
돌아와서 나는 김형중의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난다 2016)를 펼쳐들었다. 글이 씌어진 시기와 내가 광주에 머문 시기는 다르지만, 나는 그날 광주에서 본 풍경에서 옛날의 광주를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K는 스스로를 염세적인 사람이라고 믿는 편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염세적인 사람이 세상을 어둡고 삐딱하게 보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염세적인 태도는 본디 세상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정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을 때, 더 악착같이 매달리는 사람도 있고 멀찌감치 서서 관조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역시 염세주의자였다. 그래서 그의 카메라에는 매번 낡고 바래가는 것들, 허황되고 못마땅한 것들만 주로 잡혔고, 그마저도 구도와 화질이 형편없었다.” 관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렌즈에 담았다. 렌즈에 담기는 것들 중 밝은 대상은 거의 없었다. 그 안에는 심지어 죽음들이, 개인적으로 마주해야 했던 죽음과 역사상의 참혹한 죽음이 한데 섞여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비극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죽음 속에서, 죽음들 사이에서 삶은 더더욱 생생해지기 때문이다.
“K는 이 세계가 좀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시장은 항상 좀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이 세계에서 아름다운 것만 보려는 사람은 환상 속에 자기 자신을 가두고 만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다가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을 잊고 만다. 환상에서 벗어나 삶을 따로 또 같이 살아내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잔인함을 직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