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간수 틀이에요. 우리는 곰소염전에서 천일염을 가져다 쓰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 간수를 빼줘야 소금이 더 맛있어지거든.”
아산 외암마을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천일염 포대를 올려놓은 통나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니 백발 어르신 하나가 설명을 보탠다. ‘참판댁’으로 불리는 이정렬 종가의 종손인 그의 초대를 받아 사랑채로 들어서니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유물이요, 문화재였다. 규장각 직학사를 지냈다는 퇴호(退湖)의 후손답게 벽마다 고서도 잔뜩 쌓여 있었다. 그 틈에서 생전 책 읽기를 즐겼던 외할아버지의 냄새가 배어나왔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방에 가면 군불냄새와 책 냄새, 그리고 담뱃내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냄새가 났다. 나는 그것을 ‘외할아버지 냄새’라고 불렀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꼬장꼬장하면서도 짓궂은 구석이 있어 늘 손녀들에게 살가운 인사 대신 ‘못생긴 것들 왔냐’ 타박이 먼저였던 외할아버지다. 때문에 나는 외갓집에 가도 늘 데면데면해하며 애교스럽게 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의 애정표현이었을 텐데, 어린 나는 외할아버지 냄새를 핑계로 곁에 가는 것을 피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아래를 내려다보기 끔찍한 푸세식 화장실과 소똥과 여물냄새가 마구잡이로 뒤섞인 외양간이 모두 허물어지고 나서야, 나는 그것들이 그리움이 된 것을 알았다.
“여기가 외갓집이다 생각하고 가끔 놀러 와요.”
외할아버지에겐 한번도 듣지 못한 살가운 당부에 코끝이 찡했다. 동구 밖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준 어르신 덕분에 외암리가 나뭇가지에 매달린 감 하나까지 정겹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