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물 새듯 흘러간다. 알면서도 막지 못하고, 양동이를 받친다 해도 도리 없이 새나가는 물, 시간이라는 물이 졸졸 샌다. 그러니 나이 먹을수록 시간 앞에 가난해질 수밖에.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하다 얼마 전 작은 판형으로 다시 출간된 버지니아 울프(V. Woolf)의 『자기만의 방』(이미애 옮김, 민음사 2016)을 집어들었다. 1시간 반 만에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 저자의 말(이 책은 강연을 위해 쓴 글이므로) 한마디 한마디가 몸속으로 수혈되는 기분이었다.
글쓰기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우아한 무기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기득권을 가진 많은 남성들이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이 글쓰는 행위를 탄압하고 비웃으며 “병적인 현상”으로까지 몰아갔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선배 여성들은 숱한 차별과 멸시,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며 자기 목소리를 내왔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드디어, 거의, “여성으로서,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여성으로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여성이기 때문에 글쓰기를 망설이거나 방어적인 자세로 글을 쓰진 않아도 되었지만 갈 길이 멀다. 곳곳에서 여성에게 자행되는 다양하고 집요한 폭력과 ‘열등한 젠더’라는 사회의 편견이 다 사라지진 않았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면, 집 문 앞에 이르러 생각하건대, 여성은 보호받는 성이기를 그만둘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한때 자신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모든 활동과 힘든 작업에 참여할 것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예언은 적중했다. 이제 많은 여성들이 더이상 보호받는 성으로 취급받길 원하지 않는다. 여성의 진입이 불가능한 분야는 없다. 그러나 울프가 말한 ‘만약’이라는 가정(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면, 연간 500파운드의 돈을 갖는다면, 100년이 지난다면)에서 여성이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약자로 치부되어 뒤로 밀리거나 짓밟힌 여성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만약’이란 말은 빈약한 지붕이다. 그 지붕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지붕 없는 불완전한 집에 사는 여성들이 수두룩하다. ‘만약’ 한명의 여성이라도 그녀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우리는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 선배 여성들이 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