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는 기자다. 그러나 내게 있어 그는 그저 작가다. 나는 그의 새 책이 나오길 열렬히 기다리는 한 명의 독자일 뿐이고. 어떤 책이냐는 중요치 않다. 그림에 대해 쓰든, 영화에 관해 쓰든, 누군가를 인터뷰하든 상관없다.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마침내 뭔가를 써내는 그의 문장을 읽고 싶을 뿐이다.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그가 쓴 것들을 읽을 때마다 항상 놀라곤 한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글을 잘 쓸까? 단순히 필력이 좋다, 사유가 깊다, 이런 식으로 오는 느낌은 아니고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의 말에 매혹된 이가 자세를 낮추고 그의 입술을 바라보며 지속적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는 느낌에 가깝다.
『그림과 그림자』(앨리스 2011)를 읽던 날이 생각난다. 처음엔 그림을 설명해주는 책을 집어든 독자의 기대심리가 응당 그렇듯 미술에 대한 상식을 넓히는 기회로 삼으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가 보고 있는 그림이 아닌 그림을 응시하는 작가의 눈동자를, 탁월한 해석과 분석으로 말해주는 그의 말과 글이 아닌 그렇게 말하고 쓰는 그의 표정과 어투를 읽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내가 이 사람의 팬이 되었다는 것을.
이 책엔 영화에 대한 글이 담겨있다. 서문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영화의 일기’를 쓰는 나는 다만 매일 영화가 보여주는 것을 적어두는 속기사였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가장 살아 있다고, 잠시 더 나은 인간이 된다고 느꼈다.’는 작가는 ‘그 느낌을 좀 더 오래 소유하고 싶어서 영화가 아직 내 안에 흘러 다니는 동안 쓰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 책엔 ‘내게 다가와 쓰다듬고 부딪히고 할퀸 자국’이 사라지기 전에 뭔가를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 쓴 글이 담겨있다.
‘김혜리가 쓴 일기’가 정말로 ‘영화의 일기’라면 나는 그 영화의 일기를 일단 신뢰할 것이다. 그래서 아침이고 밤이고 틈 날 때마다 영화의 일기를 읽어 나갔다. 너무도 상투적이어서 쓰고 싶지 않지만 책장이 사라지는 게 아까울 정도로 즐거운 독서였다.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뭔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내게도 생겼다. 선명히 남은 자국이 눈 녹듯 스르르 사라져 버릴까봐 심야 고속버스 좁은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노트북의 백라이트에 의지한 채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