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의 일이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송은지 씨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몇년 동안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해 생각해온 그녀는 음악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모색했고,
그들에게 헌정하는 음반을 기획한다.
열명 남짓의 음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피해자에게 누가 될까 우려하는 이도 있었다.
오래전에 일본으로부터 사과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부끄러웠다.
‘수요집회’에서 할머니를 처음 뵙고,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마다 나름의 화법으로 노래를 만들어나갔다.
인간의 몸처럼 느껴지는 음반이기를 바란 송은지 씨와
음반 제목 ‘이야기해주세요’에 모티브를 얻어 노랫말을 먼저 써내려갔다.
쉽고 직설적이어야 했다.
멜로디를 붙이고 화음을 넣었다.
다른 악기는 떠오르지 않았다.
오로지 목소리로만 편곡을 하였다.
비극은 여전히 도처에 있다.
더 유명한 음악인들로 꾸려진 ‘이야기해주세요’의 두번째 음반이 발매되고,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나 책이 쏟아져나왔지만,
전 정권은 피해자와 상의도 없이 일본과 협상하였다.
이 행태는 전체주의와 전쟁의 프레임을 넘어 인간의 본성과 존엄의 훼손으로 확대된다.
베트남 참전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는 사과조차 받지 못했고,
동남아 여성들은 연예인을 꿈꾸며 한국으로 건너와 성매매를 강요당한다.
외교적 차원의 문제들을 간과할 수는 없다.
다만, 상대적으로 약한 인간에게 행해지는 비극을 끊임없이 이야기함으로써
나에게도 부당한 일을 겪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나치를 축출한 것은 그들이 절대적으로 선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압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은
말하기의 무능, 판단의 무능과 긴밀히 연결된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고 노래할 것이다.
이야기해달라고, 이 노래를 부탁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