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오스트리아에 다녀왔다. 비엔나에 도착한 날. 밤 아홉시가 넘었는데도 오후 다섯시처럼 환한 밤의 광장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서 사람들과 사물과 풍경을 봤다. 냄새도 다르고 빛과 그림자와 바람까지 다르게 부는 것 같은 생경함. 그래서 좋아야 하는데 그저 외롭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무도 나를 배제하지 않는데 나 홀로 소외된 듯 퍽 쓸쓸했다. 숙소로 들어와 씻고 침대에 누웠다. 밤 열시인데도 창밖은 초저녁처럼 여전히 푸르렀다. 이것이 시차구나,라는 실감과 동시에 피곤한 각성이 느껴졌다. 충혈된 눈동자를 껌벅거리면서 ‘왜 잠은 안 올까. 자고 싶은데 왜. 왜. 왜.’ 참으로 의아하고 괴로운 시간이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처럼 똑, 똑, 느리게,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그때 아, 하는 마음으로 가방에서 『건너오다』(문학동네 2016)를 꺼냈다. (지난봄에 이 책을 읽고서 유럽에 나갈 일이 있으면 꼭 다시 읽기로 했다.) 아무데나 펼치고 읽어나갔다. 불편한 들뜸이 가라앉고 열도 조금 내려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이대로 조금만 더 읽으면 잠도 잘 올 것 같은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문장에 밑줄을 긋고 멋대로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말 통하는 사람과 편하게 이야기하는 기분과 비슷한 느낌. 그 안도감과 자연스러움. 작가는 그렇게 읽으라고 쓴 건 아니겠지만 나는 책을 그렇게 사용했다.
“잘 웃지 않는 사람들, 가끔씩 웃는 사람을 만나도 함께 그 웃음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로 혼잡한 러시아를 떠다녔다. 그 안에 있기는 하였지만, 그 속으로 스며들 수는 없었던 시간이었다.”
낯선 도시를 걷는 이방인에게 필요한 책은 뭘까? 관광을 도와주고 정보를 주는 책이나 외국어 회화 책 같은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그곳의 정보가 아닌 그곳의 느낌과 감각을 알려주고 해석해줄 책이 필요했다.
『건너오다』는 다큐피디의 출장 산문집이다. 많은 출장지 중에서 17개국 38개의 도시에 대한 짧은 글이 실려 있다. 물론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내려면 피디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눈을 주고 그가 말해주고 안내하는 것들을 배우고 알아가는 것이겠지만 나는 그것보다 그가 그때, 그때, 느꼈던 실감들이, 그리고 그 실감을 표현한 문장들이, 마음에 닿았다. 풍경의 설명과 묘사보다 그것을 보고 있는 눈동자 안쪽의 감각과 그걸 표현해내는 느낌을 읽어내는 것이 좋았다. 그는 과장 없이 흥분 없이 담담히 그려냈다. 뭐랄까, 단순하고 정확한 감정의 지도 같은 것이다.
‘여기 가봤어? 저기 가봤어?’보다, ‘그걸 볼 때 어떤 느낌이었어? 그곳에 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어?’에 관한 대화와 공감이 필요한 이들은 비행기를 탈 때 캐리어에 이 책을 넣어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