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사람들을 만날 때,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을 주고받을 때가 있다. 이런 끔찍한 삶은 한번으로 족하다며 손사래를 치는 이들도 있고, ‘재벌 3세’라든가 ‘들판에 핀 꽃’처럼 이생에서 이루지 못한 크고 작은 희망들을 조약돌처럼 얹어보는 이도 있다. 나는 반농담조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디 조용한 두메산골에서 시(詩)의 시옷자도 모르는 문맹으로 태어나 소나 키우며 살고 싶다고. 그럼 그 소는 무슨 죄냐고, 소 생각은 안 하느냐고 나무라는 친구의 장난 섞인 말에 한바탕 낄낄거렸지만 그 소망만큼은 거짓이 아니다. 언어를 초월한 곳에서, 하루하루 숭고한 노동을 쌓아올리며 삶 전체를 시로 만들어가고픈 소망 말이다.
울라브 하우게(Olav H. Hauge)의 시집을 읽는 일은 그런 소망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는 일 같다. 노르웨이의 울빅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는 시인. 오랫동안 정원사로 일하며 독학으로 언어를 익혀 시를 쓰고 번역해왔다는 시인. 그의 언어는 금방이라도 부서져내릴 듯 연약하지만 곱씹을수록 은은한 ‘차향’이 난다. 자신에게 ‘진리’를 가져오지 말아달라고, “새가 호수에서 물방울을 가져오듯/ 바람이 소금 한톨을 가져오듯” “이슬처럼 작은 것을” 가져와달라고 말하는 시인의 두눈을 상상하면 의미로 덧칠된 나의 언어가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그에겐 불가해한 삶을 바라보는 깊고 따뜻한 시선이 있다.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며 “눈이 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읊조리는 시인에게서 진짜 시인의 얼굴을 본다. 시를 넘어선 시란 이런 것일까. 여름의 한가운데서 혹한을 만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