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4년(선조7)~1651년(효종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지혼(志渾), 호는 야당(野堂). 김명원(金命元)의 아들이다. 공신의 적자로서 중림찰방(重林察訪)에 초임되고 홍산현감(鴻山縣監) 때 광해군의 비 유씨(柳氏)의 오빠인 희발(希發)이 딸과의 결혼을 청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여 파직되었다. 인조반정 뒤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뒤에 오성군(鰲城君)에 추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