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쓰레기’와 ‘기자’의 합성어인 ‘기레기’가 대한민국 언론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지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해온 MBC·KBS의 현실은 국민의 ‘기레기’라는 비판이 무엇인지 여실하게 느끼게 한다. 도대체 지난 10년간 MBC·KBS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군사독재 시절을 한참 지난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기자·PD 들이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언론장악 방지’를 위한 법안까지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으로 MBC에서 해고된 6명의 언론인 중 한명인 박성제 해직기자는, 우리 언론의 비참한 현실 가운데 ‘누구나 공감하는 화두이지만 대안과 해결책은 독점할 수 없는’ 언론개혁의 문제를 다각도로 고민해왔다. 이 책 『권력과 언론: 기레기 저널리즘의 시대』(창비 2017)는 그런 고민과 반성의 목소리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새 정권이 창출되리라는 기대감이 꽃핀 2017년 봄, 박성제는 현장에서 치열하게 저널리즘의 가치를 실현해온 아홉명의 언론인과 전문가를 만났다. 신문·방송·시민운동·디지털미디어 등 언론계 각 분야 대표주자들과 강연·대담·인터뷰를 통해, 검찰개혁·재벌개혁과 함께 탄핵정국 이후 우리 사회가 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언론개혁의 실마리를 찾아나선다.
MBC 사태는 이명박정권 출범 이후 급속도로 악화되어온 언론환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하나의 사례다. 수구 보수세력은 낙하산 사장으로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로 종합편성채널(종편)을 조·중·동에 선물한 끝에 박근혜정권을 창출해냈다. 언론사 내부에서는 단독보도와 속보 경쟁 속에 클릭 수를 노린 어뷰징(abusing), 과장·왜곡 기사, 심지어 가짜 뉴스까지 양산하며 여론을 호도했다.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참사 앞에서 MBC의 ‘전원 구조’ 오보가 터졌다. 보수언론, 진보언론 할 것 없이 기자들은 이제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저자 박성제가 해직기자로서 지난 5년간 MBC 바깥에서 목도해온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이었다.
저자는 손석희(JTBC 보도 부문 사장)의 강연, 민동기(미디어오늘 편집국장)·최승호(뉴스타파 앵커)·김언경(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강정수(메디아티 대표)와의 굵직한 대담, 권태선(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前 한겨레 편집국장)·김경래(뉴스타파 기자·前 KBS 기자)·이명선(셜록 기자·前 채널A 기자)·배정훈(SBS 「그것이 알고 싶다」 PD)과의 진솔한 인터뷰를 통해 지금의 ‘기레기 저널리즘’을 돌파할 해법을 모색한다.
책 말미에서 저자 박성제는 말한다. “지금까지의 언론개혁은 부패한 권력과 싸워 독립성을 쟁취하는 것, 왜곡된 시장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언론개혁에는 중요한 과제 하나가 더해질 것이다.” 그 과제는 바로 “언론인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내던지고 시민과 소통하는” 것이다. “자성과 소통을 거부하는 언론은 독자와 시청자에 의해 도태되고 결국 사라질 것이다. 언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거리를 둔다는 저널리즘의 오랜 가치에 더해, 구태의연한 제도와 문화와 기득권을 깨고 언론 스스로 시민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귀기울여야 한다는 다짐이자 당부다.
* 이 글은 『민중의소리』(2017. 8. 7)에 실린 글을 재수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