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자명종을 맞춘다
원하는 시간에 자명종을 맞춰놓으면 갑자기 지금 이 시간으로부터 그 시간까지 하나의 긴 문장이 적히기 시작하는 것 같고
황유원 「자명종」
봄에는 봄의 그리움이 깨어난다
바람 만나야 소리 나는 것들 중에선 물거울보다도 마른 잎보다도 돌이 좋아요 공깃돌 다섯개 골라 굴리면 손안에서 피어나는 민물 냄새
신미나 「손오목에 꼭 맞는 돌」
바다는 받아준다, 답을 준다
우리가 삶을 사랑한다면 안목에게 묻지를 말아야지 불 켜진 안목을 사랑한다면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잊지 말아야지
심재휘 「안목을 사랑한다면」
올해 첫 보름달 뜨는 날
달은, 달은 까만 하늘에 박힌 하얀 눈동자. 내 눈은, 내 눈동자는 하얀 눈에 새겨진 까만 보름달.
정유경 「달, 눈동자」
느려도 괜찮은 2월이었기를
느리지만 나의 시계는 망가진 게 아니다 아름다운 속도로 아름다운 기울기로 아름답게 째애깍 째애깍 간다
이근화 「나의 느림은 이유가 있다」
붙잡을 수 없는 당신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마에서 북천의 맑은 물이 출렁거린다 그 무엇도 미워하는 법을 모르기에 당신은 사랑만 하고 아파하지는 않는다
이대흠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기
언젠가부터 고장난 내 안의 벽시계는 기척 없이 걸어나와 거실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기곤 한다
노향림 「시계는 낙타 울음소리로 운다」
벽돌 같은 시간이 쌓이네
나는 벽돌들의 넓은 등 뒤에 숨죽여 숨네 이유 없이 어둑어둑 아득한 그 등 그 뒤 그 먼 그 하루의 하루
김중일 「벽돌의 시간」
믿음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믿음은 아직 여물지 못해서 거름을 북돋고 잘 보살펴야겠지만 믿음에 기대는 삶이란 갸륵하겠지만
유병록 「사과」
실패와 미완은 아름다워라
양손엔 어둠과 설탕 알알이 흩어지는 기억의 모래알. 지구는 과연 둥글까. 우리는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가 맞을까.
이제니 「자니마와 모리씨」
우수,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아래로 떠내려오는 얼음장을 보며 속으로 노래한다, 저 얼음 다 녹기 전 저 수만 마리 오리들 북쪽으로 날아갈 것이다
고형렬 「우수」
고마운 이들에게 고마움을
숫자로 더하기 빼기를 셈하지 않아도 마음 더하기 마음, 마음 나누기 마음에 대한 답을 안다
김응 「마음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