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라 슬픔들아
바람이 숲을 몰래 지나가지 못하듯 억지로 못하는 게 인생이다 저녁이다 슬픔들아 어둠의 등에 업혀 집으로 가자
이상국 「저녁의 위로」
극지에서 태어나는 말
사랑해,라는 말에는 얼마나 자주 마음이 다녀가는지… 하루치 쓸쓸한 바람을 적재한 그날의 화물열차가 협곡을 지나간다
조정인 「말들의 크레바스」
자신과 세상을 지키기 위해
거래를 위한 셈법이 없는 문장들로 눈물을 벼려 담금질한 이들만이 투명하게 빛나는 돌을 손안에 쥔다
김선우 「눈물의 연금술」
무심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시베리아의 야쿠트인들은 입김이 뿜어져 나오자마자 공중에서 얼어붙는 소리를 별들의 속삭임이라고 부른다
황유원 「별들의 속삭임」
삶은 계속된다
일요일을 맞는다 기름을 끓인다 밀가루 반죽을 조금 떼어서 기름 위에 떨어뜨려본다 말하지 않는 것들을 보살피며 무성한 기쁨을 키워낼 것
여세실 「다음의 일」
나를 닮은 사랑에게
나는 사랑을 하겠다 금방이라도 왈칵 창을 열어 쏟아지는 물크러지는, 나는 없는 채로 오직 사랑만 남은 채로
박소란 「세수」
내가 원하는 미래는
느리게 오는 중이다 우리의 몸속을 떠다니는 시간의 조각
조온윤 「시간의 바다」
지금은 돛을 올려야 할 때
당신은 어느 먼바다에 있는가 어느 해류를 따라 어디에서 삼각파도로 울고 있는가
정호승 「닻과 돛 」
아까운 봄날이 지나간다
씨앗 같은 약속 참 많았구나 그리운 사람 내리는 봄비
함민복 「봄비」
꿈속에서 공중제비를 돌았다
기쁨이 지나갔다 슬픔이 지나갔다 발을 굴렀다 공중제비를 돌았다 혼자였다
최정례 「공중제비」
우리를 깨닫게 하는 풍경 앞에서
뜨거운 생명이 되기보다는 깨끗한 방안에 난분이나 앞에 놓고 나는 무슨 꽃 피우려 몸 닳았던가
박규리 「상추」
아카시아꽃 피는 밤
아카시아나무도 항복이라는 듯 흰 꽃을 밥그릇에 던진다 아카시아꽃이 피고 지다가 다시 피고 있다
박경희 「아카시아꽃 피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