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살근거리는 곡우 무렵
비는 떨어지면서 여기 나와 당신을 바라보며 저기 둘이 틀림없이 사랑한다
전욱진 「곡우 무렵」
봄을 넘어서는 방법
봄날 하루, 꽃들 불러내어도 꼼짝 않고 누워 있습니다… 견딜 필요가 없는 일을 견뎌내는 일, 이것이 내가 봄을 넘어서는 방법입니다
조용미 「몸」
오늘 나는 잠시 눈을 감는다
조문 대신 길고 길 편지가 왔다 밥알을 세듯 꽃들을 읽었다 삶이 더 길게 답장을 쓸 것이다
이민하 「사월에 감은 눈은 사월에 다시 떠지고」
간결한 삶을 향하여
광각렌즈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화면에 무엇을 담을까보다 무엇을 뺄까를 생각하게 된다 단렌즈로 갈아끼우고 대상에 한걸음 다가간다
정희성 「시법(詩法)」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자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나의 얼굴은 얼룩덜룩해져서 보이지 않지만 멀리 있는 빛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집에 도착한다.
강우근 「단 하나뿐인 손」
계절의 위로를 건네고 싶어요
더는 늦지 않게 해야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의 어둠, 슬픔, 나를 이기는 사랑에게
최지은 「청혼」
이 봄에 내가 꽃을 놓칠까봐
이 봄에 아픈 내가 꽃을 놓칠까봐 당신이 찍어 보내온 활짝 핀 벚꽃 영상 여린 꽃들 피어 무거운 가지 들어 올리는 저 힘 어디에서 왔나?
김선우 「벚꽃 잘 받았어요」
수평선이 되어야 파도가 된다
수평선 너머에 또 수평선이 있듯 출렁이고 출렁여야 수평선이 되고 수평선이 되어야 떠나온 곳이 보인다
황규관 「수평선이 되어야」
편지를 태우기 전 거듭 읽는다
나는 당신 목소리 만큼 무거운 필압을 느낀다 곁이 아니라 당신은 내 안에 있다 심장을 누르는 보라색 필기체
장이지 「외워버린 편지」
나와 화해하기 위해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에는 모든 것이 날아다닌다 뭐라도 잡고 싶어 그냥 아무거나
송정원 「화해」
봄은 지금 어디쯤 왔을까?
봄을 찾아다닌 우리한테만 봄이 먼저 찾아왔어요.
문현식 「이른 봄」
상실의 기척을 느끼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그 기척은 기척일 뿐 아무리 해도 볼 수 없는 그들에겐 우리도 기척일 뿐일까
김경미 「누가 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