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떠올리는 여름 풍경
자꾸만 사랑에 빠진다. 점프를 하면서. 사랑으로 떨어지면서. 이제 더이상 빠질 사랑이 없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한 뒤에도 나는 더 깊은 사랑에 빠지고.
여세실 「꿈에 그리던」
저물녘, 별들을 바라보면서
먼 훗날에 이미 다다른 나는 낯익은 우리의 폐가를 내려다봅니다. 도대체 몇차례의 생애를 내달려 나는 그대에게 안겼을까요.
정우영 「흐르는 별들이 내리는 곳」
슬픈 날엔 잼을 졸입니다
바닥이 눋지 않게 주걱으로 잘 저어야 하고, 너무 졸여서 딱딱해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합니다 그러는 사이 해는 지고, 울던 새들은 조용해지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황인찬 「깨물면 과즙이 흐르는」
영하의 사랑
서어나무숲에서 온 영하의 밤들 혼자 얼었다가 혼자 부러지는 고드름들 누군가를 찾으면서 기다리면서 영원히 떠나보내면서
전동균 「오대산장」
지속 가능한 행복을 찾아서
들을 수 없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리 지속 가능한 이야기를 찾아서 걷다보면
주민현 「지속 가능한 이야기를 찾아서」
끝까지 견뎌보고자 했던 마음
유리창으로 날아드는 눈을 보며 어떤 때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선명할 때가 있다고 당신이 말했었지
조온윤 「설인」
나는 그것을 끝없는 끝이라 부르고
눈을 떠 당신의 끝을 온 하늘 가득 펼쳐놓고 눈 감아 당신의 끝없는 끝을 환한 어둠 속에 가둡니다
이영광 「당신의 끝」
마중도 배웅도 없이
몇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박준 「블랙리스트」
시의 옷을 입으세요
시는 죽음 속에서 흙을 밀어올리고 피어날 것입니다
고형렬 「시의 옷을 입다」
눈은 뭉치기에 좋은 것
눈으로 밥을 짓고 눈으로 집을 짓고 눈으로 이름을 짓다가 그러고도 남은 눈은 사람을 만들었다
이민하 「신세계」
오늘은 불을 피워야지
누구도 해치지 않는 불을 꿈꾸었다 삼키는 불이 아니라 쬘 수 있는 불 태우는 불이 아니라 쬘 수 있는 불
안희연 「불이 있었다」
2026년, 크고 아름다운 나무처럼
뻗자 우리들 뿌리를 땅속 깊이 흙과 바위를 뚫고 차고 맑은 물을 찾아서 핏줄을 타고 올라와 해와 달과 별과 열매 속에서 하나 되어 꿈으로 익으리
신경림 「우리는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