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비 오는 날에 오신다면
당신이 비 가운데로 가만히 오셔서 나의 눈물을 가져가신대도 영원한 비밀이 될 것입니다
한용운 「비」
가벼운 농담을 던지는 사람이고 싶어
손을 너무 세게 잡지도 말고 곧 놓칠 듯이 잡지도 말자 힘을 빼고 서로를 바깥으로 꺼내면서 걷자
오산하 「수목」
익숙하면서도 낯선 여름 풍경
매미 껍데기가 나무에 붙어 있었다 칼로 가른 듯 등이 반으로 갈라져 있다
신미나 「안식일」
별 없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생은 본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더 많은 거라서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고 다독이는 밤
도종환 「도시 장미」
어떤 말들은 바람이 됩니다
별들이 포말처럼 떠 있던 여름밤이었습니다 파도의 운율에 귀를 내어주면 영영 흘러갈 것만 같았습니다
이대흠 「어란」
이건 말괄량이의 사랑이야
칵테일 같은 연애를 하고 싶었어 아찔한 빛깔로 열린 열매의 내부에서 폭죽이 터지듯이 들숨과 날숨이 환하게 섞이듯이
고선경 「러브 온 더 락」
누군가 나를 떨어뜨린 것 같다
나를 줍지 않아서 눈을 뜨면 깨진 방이었다 화분처럼 부서진 꿈에서 나와 햇빛을 향해 기어갔다
이민하 「흙과 물」
사물이 품고 있는 이야기 속으로
한 장 한 장 품 안의 자식을 떠나보내며 이별을 참아 내는 집 한 채 마지막 한 장마저 떠나보내고 네모난 빈 상자로 남은 집
김미희 「화장지」
인생은 그저 흐름일 뿐이다
의미 없이 흘러가는 삶이 가끔은 재밌기도 하여 못 살 이유를 찾기도 힘든 날들이다
유승도 「꼭 의미가 있어야만 사는가」
우리 여름으로 걷자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여름이 많으니까 여름으로 걷자 우리 여름까지는 사라지지 않기로 하자
유병록 「여름 편지」
몰라요, 몰라서 좋아요
모르는 목소리 모르는 얼굴 모르는 맛 모르는 감정 모르는 내일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내가 모른다는 것만은 알아요
오은 「몰라서 좋아요」
존중받는 삶을 향하여
때로는 먼 산의 나무들처럼 하루를 서 있으라. 풀벌레들처럼 구체적인 노래를 배우라.
김용택 「조용하게, 강으로, 그러다 흐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