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그컵은 놓아줄 때를 기다린다
작고 반듯한 머그컵 치울 때마다 동그란 자국이 생겼다
이소연 「머그컵」
손과 손이 만나 악수가 되고
바람과 바람이 만나 태풍이 되고 입술과 입술이 만나 말이 되고 사랑이 된다
신철규 「뜨거운 손」
살아가는 게 문득 낯설 때가 있다
잘 익은 사과가 가을비에 온몸을 내맡기고 있다… 살아가는 건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재생하는 것일까?
김용락 「가을」
기척도 없이 불안이 찾아올 때
서랍에 넣어 둔 부드러운 스웨터를 떠올리면 조금은 견딜 만해져
정다연 「친애하는 나의 불안」
입동, 겨울 오는 날
거칠고 사나운 것은 바람에게 맡겨두고 오늘 같은 밤에는 적막 가운데 자신을 놓아두면 어떨까
도종환 「입동」
내 마음을 누가 알까
풀 한 포기가 기다리는 것을 나도 기다려 본다 가만한 마음을 따라 강물은 하염없이 흐르고
이근화 「한밤중 강변에서 기다리고 있음」
가을 하늘 구름 밑에서
노을 속으로 날아들던 작은 새떼들 가을 어느날 구름 밑에서
김용택 「구름 밑에서」
조용히 살고 싶어요
사랑은 됐고요 미움은 안 받고 싶어 눈치껏 조용하게 살아요 멀미를 견디려고 자요 아주 조금씩 흔들려요
김민지 「루미노그램」
신비로운 시의 세계
하얀 사슴 몇마리가 백록담 위를 찬 바람처럼 달려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은 청량해진다
황유원 「하얀 사슴 연못」
당신이 그리운 오후
새소리가 높다 당신이 그리운 오후, 꾸다 만 꿈처럼 홀로 남겨진 오후가 아득하다
고영민 「반음계」
이런 식으로 꽃을 사기도 한다
별안간 꽃이 사고 싶다 꽃을 안 사면 무엇을 산단 말인가
이진명 「젠장, 이런 식으로 꽃을 사나」
기억과 생각의 초점
눈을 떼면 거리가 생깁니다 이 간격이 마음에 들어요 나의 골몰이 하나의 점이 될 때까지
신미나 「안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