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천에서 편지를 씁니다
사랑의 말을 편지로 쓴다는 건 얼고 녹고 부서지고 타버려도 사라지지 않을 알갱이 하나 전하는 것이지요
이대흠 「북천에서 쓴 편지」
나의 천국은
세상의 지식이 못 닿는, 세상에는 한번도 있어본 적 없는 나라, 있는 곳엔 없고 없는 곳에만 있을 게다.
유안진 「나의 천국은」
버리지 못한 욕심
욕망이란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해 자라나는 손가락이라서 밤마다 이가 자라는 쥐처럼 손끝이 가렵다. 가려워서 부끄럽다.
이현승 「일생일대의 상상」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보았네
벗어놓은 옷가지를 건드리지 않고 수락할 수 없는 것을 수락하는 연습처럼 툭,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보았네
장철문 「발을 닦으며」
여름 끝물, 뒷산에 올랐다
많은 집들 뒤에 서보았다 풀들이 쏟아질 듯이 자라 있었다 거대해진 수풀을 헤치며 뒷산에 사는 것들을 한꺼번에 떠올리려 해보았다
남현지 「뒷산에서」
당신의 나무에 접붙인 마음
먼 훗날에 조용히 뜰에 나가보겠습니다 덧나지 않은 푸른 잎사귀 하나 나부낀다면 당신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박해석 「숨은 사랑」
멈추지 않는 상념들
나는 피곤해서 잠깐 쉬려 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은데… 눈은 닫힌 눈꺼풀 속에서도 계속 눈을 뜨고 있다
김기택 「눈」
태양도 자신이 하는 일을 모르지
자신의 몸에 붙은 불이 뜨거워 사방에 불을 뿌려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따스함으로 사랑을 피워내고 그 빛으로 신을 만나게 될 수도 있지
백무산 「사랑은 사랑을 모르지」
갑자기 내리는 빗속에서
씌워드릴게요,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말을 듣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말은 왜 잊히지 않는지 왜 견딜 수 없는지
박소란 「갑자기 내린 비」
아침은 매일매일 생각한다
난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은 어선은 없는지를 조각달이 물러가기를 충분히 기다렸는지를 시간의 기관사 일을 잠시 내려놓고 아침은 생각한다
문태준 「아침은 생각한다」
매미가 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안도현 「사랑」
앞서간 사람의 용기로 말미암아
나는 스스로에게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삶은 고통이었지만 예술은 그만큼 아름다웠다는 이야기 용기로 삼고 싶지 않다
정다연 「커트 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