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투명한 오후에
소리 없는 오후 내가 사라진 것 같은 오후 너무 조용해 무엇이든 다 들켜버릴 것만 같았다 시를 썼다
최지은 「열다섯」
우리는 다르면서도 같다는 걸
모든 얼굴에서 성급히 악인을 보는 내게 사랑은 비 온 날 저녁의 풀 냄새 같은 거겠지 말했다
안희연 「실감」
여기는 모래의 세상이다
모래 한알 한알이 모두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한다면, 모래가 다 합쳐서 생긴 모래언덕은 어떤 생각의 언덕일까?
채호기 「모래」
쓸쓸함을 이기지 못해서
밥그릇에 고인 물이 바람에 쓸려가는 것이 쓸쓸해서 개는 그렇게라도 짖어보는 것이다
박경희 「그렇게라도 짖어보는 것이다」
알다가도 모를 인생의 맛
암만 봐도 그 집이 그 집인데 떡볶이 맛이 집집마다 다르다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삼남 「너와 떡볶이」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
이제 우리들 모두 여기 나무처럼 서 있다 빨간 열매로 열린 우리들의 삶 되돌아보면서 씨앗으로 모였던 옛날을 그리면서
신경림 「씨앗처럼 나무처럼 열매처럼」
한 글자 우리말 찾기 놀이 해보자
살, 알, 팔, 실, 밀, 칼, 탈, 쌀, 꿀, 뿔… ㄹ 받침 한 글자 속에 자연이 들어 있구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소중한 것들이 들어 있구나
김은영 「ㄹ 받침 한 글자」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그 모든 순간을, 모든 사물이 담긴 한 줄의 시를 써줄 텐데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으로 일생이 흘러가는 시를 줄 텐데
진은영 「시인의 사랑」
시월이 곁에 왔어요
시월에는 물드는 잎사귀마다 음색이 있어요 봄과 여름의 물새는 어디로 갔을까요 빛의 이글루인 보름달은 어디로 갔을까요
문태준 「음색(音色)」
어두운 화단에 불을 켠다
식물을 사는 마음과 식물을 기르는 마음의 차이 아니, 식물의 넓이를 상상하며 공간을 고르는 마음의 의미
최현우 「손과 구름」
마음을 미음처럼 끓입니다
아시겠지만 진득하게 남는 것은 버려야 합니다 묽어져야 합니다 고개를 파묻습니다 나는 아직 네게 갈 수 없다 합니다
박준 「마음을 미음처럼」
누가 사랑을 정의하는가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외곬의 믿음, 너를 향한 나의
정끝별 「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