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산호자나물을 먹는다
본격적인 가을에 닿은 것도 아니고 겨울 소식이 들려오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새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입맛을 다신다
박성우 「산호자나물」
자꾸만 슬퍼지는 것이 삶일까?
다음 생은 엉망으로 살고 싶어, 마음껏 엉엉 울고 그 누구도 되지 않는,
최지인 「섬」
사랑은 지루하지 않죠
아무리 지루한 풍경이라도 사랑 속에 있을 땐 가슴이 두근거리거든요 사랑은 그러니까 습관이 되어도 좋아요
손택수 「봄은 자꾸 와도 새봄」
가볍다를 가엽다로 읽는 늦여름
저 잎새는 어제보다 오늘 더 가엽고 초록의 실연을 훔쳐보던 사람들의 눈빛도 덩달아 가엽다
박소란 「가여운 계절」
사과 꼭지의 마음
절벽과 절벽의 마음을 잇기 위해 사과 꼭지는 나머지 성장을 멈춘다
박승민 「사과 꼭지는 멈춘다」
8월의 크리스마스
동네 사진관의 통유리 속 하늘에다 빛의 눈사람을 뭉쳐 세워도 봅니다 스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8월의 눈사람입니다
장이지 「8월의 크리스마스」
깨어 있는 삶을 향하여
주의하십시오 오래된 꿈을 꾸는 오늘 당신도 통조림이 되지 않게
김경후 「번데기 통조림」
진실함과 정직함을 찾아서
하늘색은 하나가 아니다 살색도 마찬가지 저마다 난색을 표하는 세상을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김민지 「콜로라마」
끝이 없을 것 같아도
잘잤다 눈 비비고 일어나면 미루나무 그림자 늘어난 텃밭에 가을 온다 가을 온다
심호택 「늦여름」
공은 왜 자꾸 돌아와?
온 힘을 다하여 야구를 보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공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조금만 참아달라고 하던 사람들이 사라질 때까지
남현지 「실업자가 야구 보는 이야기」
천국은 내려올 생각이 없나
천국이 알아서 내려와주면 좋으련만 천국은 저 위에 있어서 우리는 자꾸 올라가다 미끄러지기만 한다는 것을
황유원 「에스컬레이터」
당신의 지도를 이루는 것
바람 속에서 다가온 것들, 바람 속에서 떠난 것들 왜 그려 넣지 않는가 사랑과 눈물과 휘청거리는 꿈은 왜 그려 넣지 않는가
박서영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