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매미 울음소리를 언제 처음 들었지
무엇의 파동에 나는 날개를 떨고 있을까
정우영 「불쌍한 파동들」
바람개비를 심는 마음
바람이 온다면, 내가 바랄 수 있다면 다 바람 그게 오는 거야, 나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보내 버릴 바람이 오는 거야
김준현 「바람개비 정원」
사랑이 떠난 자리에서 사랑은 시작된다
눈이 환한 상수리나무 밑에 여름 진달래나무 먼저 아픔이 끝난지라 간결하고 둥근 잎은 살이 푸르고 첫사람을 잊은 얼굴은 아름답다
고형렬 「여름 진달래나무를 보다」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세상은 다른 사람들의 것 나는 그들 사이에 맺혔다 사라지는 물방울 같은 것
최정례 「다른 사람들의 것」
칠월은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
능소화가 초록에 가려진 열망을 강렬한 색깔로 바꾸는 달 칠월은 연꽃이 진흙 속에서 두 손을 고요히 모으는 달
도종환 「칠월」
지나간다, 지나갈 것이다
희극도 비극도 아닌 애매한 연극 속 배우처럼 싱거운 유머처럼 마음 같은 건 이제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최현우 「지나가고」
그런 언덕이라면 좋겠습니다
발보다 눈이 먼저 닿는 중간중간 능소화 얽힌 담벼락 이어져 지나는 사람마다 여름을 약속하는
박준 「바람의 언덕」
나는 어디일까 누구일까
나는 구름이 아니고 새가 아니지만 자꾸 떠간다 멀어져간다 당신에게서
박소란 「후경」
그것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회색 도넛 구름 밑에 있었다 찌리찌리 찌리리 우는 새 울음 사이에 있었다 연초록 바람 사이에 있었다
이경림 「바위」
감자의 시간을 헤아린다
나는 울퉁불퉁한 얼굴로 눈을 감고 그건 어쩌면 기도하는 자세와 같고
이기성 「감자의 멜랑콜리」
여름, 무성해지는 시간
지금 당장이라도 나무를 끌고 하늘로 오르고 싶은지 가지마다, 편대를 이룬 헬리콥터처럼 프로펠러를 돌려대는 잎새들
이승희 「여름 나무」
여름은 살구를 손에 쥐여준다
길고 무더운 여름이 계속되겠지만 장판 위에 누우면 살구와 바다와 마음이 나란한 동해
남현지 「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