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보내는 마음의 자세
정오쯤 일어나서 햅쌀을 안치고 거실 바닥 쓸고 화분에 물도 주고 하는 날 쓸모없는 나절을 꼭 보낸 다음 사랑하는 소리를 듣고 내는 날
전욱진 「휴일」
네 마음에 맴도는 봄비
공손한 마음의 봄비 온다 먼 산등성이에 상수리나무 잎새에 송홧가루 날려 내리듯 봄비 온다
문태준 「봄비」
마음은 아래로만 흐른다
나는 어느 착한 사람을 떠나 흐르고 흐르다가 제비집 같은 산중턱에 홀로 맺혀 있는가
박규리 「봄, 한낮」
조금도 쓸모 없지 않은
쓸모없는 거룩함 쓸모없는 부끄러움 푸른 앵두 바람이 부는데 그림액자 속의 큰 배 흰 돛 너에 대한 감정
진은영 「쓸모없는 이야기」
노란 꽃을 주세요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김수영 「꽃잎 2」
우리는 모두 무게를 지닌 존재들
모든 절박한 것은 무게다 슬픔의 모든 것은 무게에서 배어나온다 견디기만 해왔던 무게 들어내려고만 해왔던 그 무게에서
백무산 「무게」
삶은 가끔 트램펄린
튀어 오르는 자의 기쁨을 알 것 같다 뛰어내리는 자의 고뇌를 알 것도 같다 트램펄린을 뛰는 사람들
남길순 「한밤의 트램펄린」
춘분, 낮과 밤이 같아지는 때
밖은 쌀쌀한데, 안은 따뜻하고 평화로워서, 계속 밀려오는 졸음.
유혜빈 「춘분」
시간이라는 길 위에서
미안해요, 라는 말은 날아가고 나는 남았고 당신은 떠나는 것 어제란 그런 것
박서영 「미안해요」
당신의 구슬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구슬이 다 쏟아져도 새로운 구슬 안에는 우리가 간직한 마음이 들어 있고 바닥에 엎드려서 구슬을 치고, 구슬을 들여다보는 아이들
강우근 「우리의 바보 같은 마음들」
기차는 좀 느리게 달려야 해
사람은 좀 느리게 살아야 해 사람이 기차고 기차가 사람이야 미친 듯 허겁지겁 사는 거 부끄러워
곽재구 「기차는 좀더 느리게 달려야 한다」
당신의 가장 외로운 부분을 향해
세상의 소음이 잠시 낮아지는 낮에 당신 가슴에 먼지처럼 내려앉고 싶어.
주민현 「당신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