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은 시론에 해당하는 시를 가끔 쓴다. 시가 어떤 방식으로 착상을 얻고 어떻게 끝을 맺게 되는지를 말하는 것이지만 모든 시가 그렇게 쓰였다거나 그렇게 쓰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자기 시에 대한 해설이거나 자신이 시인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게 된 어떤 계기에 대한 기념일 경우가 많다. 그렇더라도 이 ‘사적 시론’은 모든 시대의 독자들에게 특별한 재능을 지닌 시인 한 사람을 증명해주는 어떤 신표 같은 것이 된다.
시인들은 시로 자신의 묘비명을 쓰기도 한다. 흔히 ‘잘 살지 못했던’ 나날을 슬픔 반, 해학 반으로 서술하는 이 묘비명 시는 그 시를 쓰는 시인 자신의 시이건, 남의 시이건 시의 청결함을 증명하는 매우 오래된 수단이었다.
장석남의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창비 2017)에는 시론이기도 하고 묘비명이기도 하며 또다른 것이기도 한 시 「불멸」이 있다. 금석에 새겨야 할 ‘불멸’의 비문을 시인은 “갈잎 소리 나는 말”로 쓰려 한다. 그 말은 낙엽처럼 소곤거리는 말이겠지만, 어쩌면 갈필(渴筆), 곧 마른 붓으로 쓰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 가랑잎 소리 나는 행장의 기록은 매우 길어서 그 가랑잎을 몰고 가는 ‘사나운 눈보라가 읽느라 지쳐’ 몸이 기울고 ‘굶어 쓰러져 잠들’기도 하지만, 사시사철의 모든 바람이 그 읽기에 참여하니 바람소리가 곧 비문 읽는 소리가 된다. 비문을 쓴 시인도 비문을 읽는데, 오는 봄마다 ‘꽃으로 낯을 씻고 나와’ 읽는다는 말은 시인 그 자신이 바람처럼 산다는 말이겠고, ‘미나리 먹고 나와 읽을’ 것이라는 말은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삶을 살겠다는 뜻이겠다.
시인은 또한 ‘가장 단단한 돌을 골라’ 자신을 새기려 하는데 그 방법이 특별하다. ‘꽃을 문질러 새기려’ 하고 ‘이웃의 남는 웃음을 빌려다가 펼쳐 새기려’ 한다. 가장 허약하거나 가장 가벼운 것들이 어떻게 가장 단단한 것에 저 자신의 위력을 남길 수 있을까. 시인은 시의 끝에 자신을 ‘그렇게라도 기릴 거야’라고 결심하는데, 오히려 그렇게밖에는 기릴 수 없을 것이라는 말로 읽는 게 옳겠다. 가장 섬세한 것에서 가장 강력한 얘기를 채집해온 것이 바로 시의 역사다.
「불멸」은 시론이고 시인론이다. 늘 섬세했고 여전히 섬세한 장석남은 시의 한 고개를 넘어가면서 이렇게 제가 해온 일의 가치를 정리하고 또 한번 단단한 결심을 한다. 장석남은 새해에 쉰셋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