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처음이 아니었다. 히로라고 이름 붙인 회색 아비시니안과 며칠 지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와 분양자와 내 사정이 여럿 얽혀 다시 돌려보내야 했다. 고양이를 보내는 자리에서 분양자는 내게 언젠가 다시 고양이를 키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때 나는 그 말을 귀담지 않고 고양이가 쓰던 물품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방을 비웠다. 그리고 정확히 일년 반 뒤 나나를 만났다.
도서관에 다녀와 생각 없이 인터넷 고양이카페 분양게시판을 보고 있었다. 한 게시물을 보고 어떤 마음에 이끌려 글을 올린 사람에게 연락했고 나는 어느새 택시를 타고 이문동으로 가고 있었다. 한 대학교 앞에서 분양자를 만났다. 그는 등나무 아래 벤치에 자리해 들고 있던 가방 두개 중 하나를 열었다. 그가 그 안에 조심스럽게 손을 넣었다 빼자 고양이가 천천히 드러났다. 꼭 자신의 이름처럼 생긴 나나. 만나면 이름을 바꿔줘야겠다던 생각이 말끔히 가셨다.
나나는 흰 몸에 회색과 고동색 계열의 줄무늬와 바둑무늬가 있었고 이유식으로 불린 사료를 먹느라 입가가 물들어 약간 누랬다. 분양자는 동네 고양이가 집 지붕에 새끼를 낳았는데 젖을 먹이지 않고 돌아다녀 새끼가 내내 울었다고, 이웃에서 불만이 많은 데다 위험해보여 구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집에는 앞서 구조한 아기 고양이가 세마리 있어 나나까지 보호할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경계의 따뜻한 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나는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조용했다. 집에 도착해 청소하는 동안에도 잠자코. 그리고 가방을 열자 아주 천천히 밖으로 나와 방 안 이곳저곳을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냄새 맡았다. 의자 바퀴를 잡은 채 장난치고 낯가리지 않고 내 품에 안기더니 밤에는 배에서 목으로 조금씩 움직이며 잠결에도 쉼 없이 가르랑거렸다. 그렇게 부드럽고 따뜻하고 귀여운 존재는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누구보다 가까이에. 방의 여백이 나 아닌, 살아 움직이는 또 다른 생명의 온기로 채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