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듣는 노리플라이(No Reply)의 ‘강아지의 꿈’은 이렇게 시작한다. ‘너무 아픈 꿈을 꿨어 네가 날 거리에 두고 떠나가는 꿈을 잠에서 깨 눈뜨면 희미해진 너의 비누향기만이’ 이 노래를 들으며 마음이 애틋해질 때마다 나는 바닥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는 호치형제들을 들어올린 뒤 눈을 맞춘다. 그러면 맑고 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바라본다. 넌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사니? 내가 물으면 녀석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서 빨리 내려달라고 도리질을 친다.
내려놓으면 잽싸게 사료통으로 달려가 앞발로 사료통을 톡톡 치며 나를 돌아본다. 꿈같은 건 도무지 모르겠고 일단 잠에서 깨 배가 고프니 먹을 거나 좀 달라는 거다. 못 본 척 가만있으면 치즈가 내 앞으로 와 두발을 들어 박수를 친다. 언젠가 토끼처럼 깡총하게 서 앞발로 박수치는 모습이 귀여워 밥을 줬더니 이젠 박수만 치면 먹을 게 나오는 줄 안다. 그 순수한 기대를 차마 배반할 수 없어 나는 그럴 때마다 밥을 주었고 녀석들은 바람 넣은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었다. 아기들이 점점 돼지가 되어가고 있다고 아내는 야단이다.
더벙이를 떠나보낸 아픔을 겪은 적 있는 우리는 호치형제들과 우리가 함께 보낼 날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유한한 생명들끼리 유한한 시공간에서 우연히 빚어내는 감정의 형상들을 조금 더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는 조건이 되어주기도 한다.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매번 소중하게 찾아드는 순간들.
고양이들도 꿈을 꾼다. 어린 호두가 잠을 자며 웅얼거리는 소리를 몇번 들은 적이 있다. 가끔은 잠꼬대를 하는 양 몸을 움찔하기도 한다.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 엎드려 호두의 뺨에 입을 맞춘다. 호두가 졸음에 겨운 눈으로 날 바라본다. 뺨을 긁어주면 기분 좋은 듯 고르릉 소리를 낸다. 아내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말한다. 고양이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고. 나는 웃는다. 그리고 믿는다. 언젠가는 호치형제들이 조심스레 다가와 잠든 내 귀에 대고 자신이 꾸었던 꿈을 속삭여줄 날이 올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