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9개월 무렵, 오랜만에 고향집에 갔다. 머무는 내내 아빠는 고양이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분위기가 좀 좋아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달래듯 “좋은 말로 할 때 고양이는 어디로 보내라 잉” 말했고, 그러면 바로 분위기가 냉각됐다. 아빠 역시 멀리 살아 가끔밖에 볼 수 없는 딸자식과 얼굴을 붉히는 것이 괴로운 듯했다. 남편은 내게 그렇게 감정 소모할 일이 아니라고 웃어넘기라 했지만, 난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정색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았고, 조금의 여지라도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싫었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날 밤이었다. 식탁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아빠가 작정한 듯 말했다.
“너희는 너희 일이라고 하지만, 곧 태어날 아기의 할아버지로서 나도 이 일에 참견할 권한이 있다.”
그러더니 급기야 아빠는 승산 없는 승부수를 던졌다.
“나냐, 고양이냐. 선택해라.”
그러니까 본인과 고양이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
우리의 뜨악한 침묵에 아빠는 당황했고, 상처받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나중에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한테 그만 좀 하라고 해. 아빠 마음만 상할 뿐이야.”
“아빠가 괜히 그러냐? 너희 걱정해서 그러는 거잖아.”
“엄마아빠는 내가 고양이를 쉽게 어디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럴 수 없어. 금교는 나한테 자식이나 마찬가지야.”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그래, 지금은 백번 말해도 소용없지. 한번 낳아봐라. 그럼 알게 될 거다. 누가 더 소중한지. 니 새끼 낳은 다음에 그때도 고양이랑 똑같은지 한번 봐봐라.”
엄마의 이 말은 아빠의 말 이상으로 나를 화나게 했다. 돌아오는 케이티엑스에서, 난 생각했다. 저 말을 듣는 순간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왜 그 말이 이다지도 마음에 맺혔는지. 그리고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사실, 두려웠다. 혹시라도 내가 정말 그렇게 될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