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드리겠으나 잠은 잘 곳 없으니/ 저 아래 마을 여관 가서 자시오”
살다보면 불편한 잠자리에 들어야 할 때도 있는데요. 더구나 일전에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 함께 잠을 자야 할 땐 더더욱 난감해져 도무지 잠이 오지 않을 텐데요. 이 사람 좋은 스님 덕택에 애먼 보살님만 혼자 자던 잠을 셋이 자야 할 판이 되었는데요. 말보단 마음이 훨씬 고와 보이는 보살님이 얼떨결에 “쓸쓸한 참회의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무당 두 사람이 산기도를 왔다가
느닷없는 가을비에 떨며 서성이다가
해가 져 할 수 없이 암자에 들어
스님, 마당에서라도 하룻밤 묵어 가면 안될라우?
꾸벅꾸벅 졸던 스님 뛰어나가
아이고, 어서 오소! 공양부터 드시오
나에게 밥 차려 오라는 눈치다
저녁은 드리겠으나 잠은 잘 곳 없으니
저 아래 마을 여관 가서 자시오
나는 맵게 말을 끊었다
사람 좋던 스님
처마 끝으로 후득후득 비 긋는 소리
무심히 듣고 섰더니,
혼잣말인 듯 한숨인 듯……
……따스한 방안에서
여지껏 비에 젖지 않은
자네가 마을 여관 가서 자고
한비에 온몸 젖은 사람들은
따스한 이불 펴고 방안에서 주무시게……
빗물이 계곡을 덮쳤다
가을비에 웬 천둥까지 내리는지……
그날 밤, 나는 여인 둘과 한방에 나란히 누웠다
쓸쓸한 참회의 잠이 고즈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