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의 '시가 어려운 당신에게' 59
누구는 우연한 실수로 하루를 망치기도 하고, 누구는 우연한 실수로 평생을 망치기도 하는데요. 해질녘, 거리 한 모퉁이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한 아이가 달아납니다. 이 아이의 손에는 ‘긴 막대기’가 들려 있는데요. 이 아이는 일부러 유리창을 깬 걸까요? 아님, 실수로 유리창을 깬 걸까요? “얼굴은 시퍼러둥둥하다”가 힌트라면 힌트일 텐데요. 아이를 가로막고 선 ‘검은 그림자’는 아이를 다짜고짜 다그칠까요? 아님, 다친 데는 없니? 하고 물어볼까요. 좋은 시는 역시 뭔가를 보여주면서 생각할 거리를 주되, 다 보여주지도 않고 다 말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달아난다
아직 해가 넘어가지 않은 거리 한 모퉁이
유리창 깨지는 소리
아이가 달아나고 있다
아이의 손에는 긴 막대기가 있고
얼굴은 시퍼러둥둥하다
불쑥 아이 앞으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