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도요 씨께.
도요 씨, 비둘기입니다.
한참 동안 편지를 드리지 못했어요. 여름도 가을도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시간이 흐르는 중에도 유리병 뚜껑을 열어 무화과 잼을 토스트에 바르고 차를 마시는 시간에는 제주의 바닷가나 무화과나무가 서 있는 이웃집 할머니의 마당, 억새 핀 오름을 그려볼 수 있었어요. 좋은 시간을 선물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졸리면서 출출했던 오늘 오후, 외근을 나갔던 동료가 벌써 붕어빵이 나왔더라며 품에 붕어빵 봉투를 안고 돌아왔어요. 출판단지에서 보기 어려운 붕어빵 주위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습니다. 속이 꽉 찬 붕어빵이었어요.
멀고 먼 퇴근길, 오늘은 겨울의 주전부리를 찾으며 걸어보자 하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놀랍게도 전철역 출구 앞에서, 역 안에서, 버스 창밖으로 계란빵, 붕어빵, 델리만쥬, 호두과자, 군밤, 호떡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집 근처 횡단보도 앞에 겨울이면 늘 서 있는 붕어빵 노점도 어느새 자리를 잡고 서 있더군요.
주전부리를 찾으며 걸어보자 했던 것은 실은 타꼬야끼에 맥주 한잔이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타꼬야키 만나게 해주세요. 타꼬야끼 만나게 해주세요. 주문을 외우면서 걸었지만 끝내 만날 수 없어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고 나와 집으로 터덜터덜 걷던 때였습니다. 저 멀리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조그만 빨간 트럭이 서 있었어요. 빨간 등이 걸려 있는 그 트럭은, 맞아요. 타꼬야끼 트럭이었어요.
매운맛, 순한 맛 4개씩 8개의 타꼬야끼가 담긴 포장 박스를 두 손에 쥐고 걸었더니 적당한 온기가 손을 데워주었습니다.
토베 얀손의 『여름의 책』에서 이런 글을 보았어요.
“찾고 모은다는 건 신비한 일이지. 찾는 것밖에는 안 보이니까. 크랜베리를 찾고 있으면 빨간 것밖에 안 보이고, 뼈를 찾고 있으면 하얀 것밖에 안 보여.”
찾는 것이 ‘찾아지고’ 만나고 싶은 것이 ‘만나지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늘 만나고 싶은 도요 씨, 가을 오름에 오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휴가는 12월 끄트머리에 몰아서 써야 할 것 같아요. 겨울이 되면 농사를 마친 농부처럼 가뿐한 마음으로 제주에 갈게요. 도요 씨가 일하는 서점에도 가고 작은 해변에도 같이 가요.
도요 씨가 좋아하는 ○○카페의 원두를 편지와 같이 부칩니다. 그곳에도 좋아하는 카페가 생기셨겠지만 분명 반가워하시겠죠.
그럼, 또 소식 전할게요.
서울의 비둘기로부터.
편지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부치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 윤동주 「편지」, 창비 『민들레 피리』(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