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난 지 한달 만에 부모님이 서울에 방문했다. 태어났을 때 오신 이후 처음이었다. 그들이 집에 온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엄마아빠가, 특히 아빠가 달라졌다는 것을. 그들이 이제 고양이의 존재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아기를 보던 아빠가 말했다. “동물이랑 같이 크면 면역이 좋아진다고 하더라. 우리 애기 아토피는 없겄다.”
그 말을 듣자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면역에 대해 내가 입이 닳도록 말했는데 이제야 어디서 들은 것처럼 말하는 게 어이없긴 했지만 말이다.
부모님이 우리집에서 머문 마지막 날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4월 27일이었다. 아빠는 새벽부터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며 정은이가 갑자기 배탈 나서 못 온다고 하는 것 아니냐 걱정했다. 하지만 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우리는 점심으로 족발을 먹기로 했다. 그때 상추를 씻는 엄마 옆으로 금교가 다가와 야옹야옹거렸다.
나는 엄마에게 금교가 상추를 아주 좋아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아빠가 와서 상추 한 장을 바닥에 던져주었다.
“나는 찢어서 주는데 한장을 통째로 다줬어? 아빠 인심 썼네.”
무심한 듯 말했지만, 나는 무척 기뻤다. 아빠가 금교에게 건넨 (정확히는 던져준) 상추잎 한장. 그것은 내겐 김정은 위원장이 북에서 공수해온 ‘평양냉면’만큼이나 감격적이었다. 긴 불화의 시기가 지나고 찾아온, 감동적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