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저는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입니다. 저는 한 사람을 좋아하는 보통사람입니다. 그러나 제 주변에서도, 이 세상도 그런 사람은 보통이 아닌 비정상으로 분류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도 저에게 비정상이라고 분류하는 세상에서 혹여 작가님이 주실 처방전은 없을까요. 그저 따뜻함을 느끼고 사랑하는 이와 주변의 축복 속에 인정받으며 지낼수록 있는 것은 동성애자인 저에게는 꿈같은 것일까요.
처방시
가장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간다
가장 더러운 것들을 싸안고 우리는 간다
너희는 우리를 천하다 하겠느냐
너희는 우리를 더럽다 하겠느냐
우리가 지나간 어느 기슭에 몰래 손을 씻는 사람들아
언제나 당신들보다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흐른다
처방전
결론부터 말하고 싶습니다.
아니요. 당신의 사랑은 이미 있는 그대로 축복받은 사랑입니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퀴어문화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친구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람으로서 그곳에 ‘함께 서는 사람’이고자 했습니다. 뜨거웠습니다. 그날 그 볕 아래에서 저와 제 친구는 연신 땀을 닦아가며 무지개 그림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군형법 92조의 6’ 폐지를 촉구하는 이들과 ‘분노의 질주’를 콘셉트로 해 분장한 여성단체 사람들, ‘암스테르담 레인보우 드레스’ 앞에서 세상 예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을 목격했습니다. 밝은 미래를 눈앞에 두고 있던 셈이지요. 모두 무궁무진해 보였습니다. 그 얼굴은 그 옛날 제가 감히 꿈꾸던 것이었습니다. 미래였지요.
텔레비전 만화영화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보면서 제가 상상한 미래와 지금은 달라도 아주 다릅니다. 문명의 발전이란 빠르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딥니다. 그러나 그때는 제가 상상조차 할 수도 없던 ‘퀴어문화축제’는 이미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권 신장은 느리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빠릅니다. 인권이란 결국 너의 존엄을 나의 존엄으로 여기는 ‘사랑의 행위’겠지요.
인생은 방향이지 속도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 대신에 인권이나 사랑을 넣어보면 어떨까요. 송*선 님은 이미 사랑의 방향을 세운 사람이지요. 그렇다면 속도는 상관이 없습니다. 더딘 속도로 이루는 사랑은 그런대로 재미가 있고, 빠른 속도로 이루는 인권 또한 그런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사랑을 누군가가 허하고 허하지 않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 누군가의 축복과 저주가 당신의 사랑을 좌지우지하지 않게 하세요. 당신의 사랑은 두 사람의 것입니다. 두 사람만이 두 사람의 사랑을 정치할 수 있습니다.
괜찮다면 오늘은 꼭 이런 글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한 정치인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2018년 1월 28일 국회의원 가운데 처음으로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성별, 장애, 병력, 인종,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나이,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자”는 내용이었지요. 그가 꿈꾼 처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가 꿈꾸던 내일은 어떤 미래였을까요? 그가 꿈꾸던 미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을까요? 그가 꿈꾸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많으면 현실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은 얼마나 어렵지 않게 사람을 설득하는 말인가요. 얼마나 무겁지 않게 사람을 설득하는 말인가요. 그러나 이 말에서 느껴지는 어려움과 무거움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그 처음의 무게를 기꺼이 어깨에 짊어지고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향해 천천히 걸어나가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만이 이런 비유를 떳떳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된 불판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시커멓게 됩니다.’
저는 오늘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그에게서 받은 축복을 떠올리면서 울었습니다…… ‘강물은 아래로 흘러갈수록 그 폭이 넓어집니다’라는 그의 말을 빌려 송*선 님에게 청유하고 싶습니다. 꿈은 아래로 흘러갈수록 넓어집니다. 우리 같이 흘러가요. 이때, 우리가 향하는 아래란 어떤 곳일까요. 아마도 모두 다른 곳이겠지요. 모든 사랑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한곳으로 모이는 강물 같은 것이 아닐까요. 당신의 사랑을 당신이 꿈꾸는 세계로 흘려보내면 좋겠습니다. 고여 있지 않도록. 당신의 사랑이 역사적인 것이 되도록요. 그때 당신은 현재의 사랑을 이루는 미래의 사람이 될 겁니다. 누군가의 인정 같은 건 필요 없이 당신 혼자서, 당신의 내면에서 스스로 씩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