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만 마음속에는 어떠한 감정들이 숨어 있을까.”

뾰족하고 못된 마음을 먹은 날엔 심장과 폐 같은 내 몸의 기관들이 숯처럼 새까맣게 느껴진다.

나는 어쩌자고, 누군가에게 저리도 상처가 되는 말을 했을까.

나는 어쩌자고, 누군가에게 저리도 차가운 눈빛을 보냈을까.

그 말과 눈빛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한 것임을 깨달을 때

숯같이 새까만 마음은 부서져버린다.

한번 뱉은 말은 결국 상대방의 귀에 앉아 죽음을 맞이한다는 문장이 친구의 산문집에 있다. 그 말이 나는 몹시 잔인하고 서글프다고 얼마 전에도 말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 그 말을 새까맣게 잊고 나는 또 나쁜 말들의 장례식을 상대방의 귀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새까맣게 잊고서 나 하나 편해지자고 새까맣게 나쁜 말들을 또 자행하는 것이다. 영원히 선한 사람도, 영원히 악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런 날에는 문득 내 마음이 애드 라인하르트(Adolph Frederick Reinhardt, 1913~67)의 블랙 페인팅을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작품이 카메라 등으로 복제되지 않길 바랐던 라인하르트의 블랙 페인팅 시리즈는 지금 내가 이 온라인 공간에 사진을 잔뜩 보여준다고 해도 제대로 느낌을 전할 수 없다. 저 새까만 색 아래에 숱한 다른 색들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이렇게밖에 소개할 수 없어서 애석하다). 그래서 저 작품 앞에 서면 온종일 바라보게 된다. 이렇듯 라인하르트의 블랙 페인팅 시리즈는 보여주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작품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보여줄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는 1961~67년도에 블랙 페인팅 시리즈를 발표한다. 그의 이전 작품들은 이 시리즈와 달리 큐비즘에 가까운 추상들이 많다.

새까만 검정 페인팅 아래에는 스멀스멀 푸른빛이 보이고, 또다른 오묘한 빛들도 배어나온다. 악한 마음 아래에는 어떤 감정이 깔려 있을까? ‘부끄러움, 수치스러움, 당황스러움, 속상함, 억울함…’이다. 누군가에게 악한 마음을 가질 때의 나를 돌아보면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에 상대방이 나를 부끄럽게 하거나, 수치스럽게 하거나, 당황하게 만들거나, 억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악한 마음에 여러 불쾌한 감정들이 조각보처럼 모이고 엮여 새까만 색이 된다. 그리고 그 새까만 마음은 자세히 들여다봐야 비로소 어떠한 감정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내 마음이 악해질 때 이 감정의 조각보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새까맣고 더러운 감정은 돌덩이가 되어 가장 가깝고 편하게 여기는 누군가를 향해 굴러간다.

안타깝게도 그 돌덩이를 만들 수 없는 방법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매일매일 수많은 불쾌한 감정들이 쌓인다. 하지만 타인을 향해 굴러가는 돌덩이를 멈추게 하고, 그 감정들로 마음의 울타리를 만들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욕망과 그림자들을 더 깊이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던 것...

내가 피하고 싶던 것...

수많은 어두운 감정들을 스스로를 이해하는 도구로 활용한다면, 우리는 모두 좀더 나은 내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