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말. 그 말이 유난히 싫어질 때가 있다. 타인의 말에 마음이 찢겨 마치 그물처럼 된 것 같은 날이 그렇다. 지구상 생명체 중 언어를 가장 다채롭게 구사하는 것이 사람이기에, 서로에게 언어로 주는 상처의 크기도 사람이 가장 클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면서 사는 사람과,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 듣고 싶은 말을 다 들으면서 사는 사람과, 꼭 필요한 말조차 듣지 못하고 사는 사람. 대부분의 우리는 전자이지만 또다른 누군가는 후자로 살아간다. 16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화가 헨드릭 아베르캄프(Hendrick Avercamp, 1585-1634)가 그랬다.
언어 장애를 지닌 어머니 아래에서 태어난 그는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한 채 평생을 살았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지금보다 평균 기온이 훨씬 낮았던 이른바 ‘작은 빙하기’에 속한다. 그 추운 날들처럼 그의 목소리와 청각은 늘 얼어붙은 고요 속에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에게는 두 눈이 있었다. 그는 두 눈으로 세상의 깊은 광경들을 바라보았다.
아베르캄프는 주로 네덜란드의 겨울 풍경을 그렸다. 태어난 곳은 암스테르담이지만, 지낸 곳은 중북부에 위치한 캄펜(Kampen)이었다. 겨울이 되면 그는 캄펜의 얼어붙은 강과 호수, 그리고 그 계절을 지나는 사람들을 빼곡하게 그림에 담아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캄펜의 말없는 자(The mute of Kampen)’라고 불렀다.
배를 타거나 다리를 통해 건너야만 하는 강이지만 겨울에는 달랐다. 겨울이 오면 그곳의 강물은 튼튼하고 하얀 얼음길이 되었다. 사람들은 빙판 위에서 썰매와 스케이트를 타고, 골프 종목의 기원이 된 ‘kolf’를 즐기기도 했다. 그림 속에는 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계층도 성별도 나이도 모두 다르지만 얼음 위에서는 모두 어린 아이처럼 천진하다. 빙판 위에서 넘어진 사람, 두 손을 꼭 잡고 데이트하는 사람도 보인다. 사랑스러운 소란함이다.
아베르캄프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든 그림의 화면을 반으로 접었다. 반으로 접힌 지평선은 땅과 하늘을 공평하게 나눈다. 그의 그림이 유독 넓어 보이고 깊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평생을 말없이 살았던 그의 그림을 바라보면 신기하게도 그가 하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들린다. 오래 묵은 침묵이 낳은 수다스러운 겨울 이야기다. 그의 그림을 닮은 사람이고 싶다. 세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 안의 진실 같은 것들을 타인에게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