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람을 그린 그림을 볼 때면 유독 오래 눈이 마주치게 되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도 그중 하나다. 정면을 보고 있는 세명의 여인, 그리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두명의 여인… 다섯명 여인의 얼굴이 모두 같은 사람처럼 보인다.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놀란 것인지 도무지 감정을 알 수 없는 아리송한 그녀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연유는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자화상 역시 아주 흡사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뱅 푸스코(Sylvain Fusco, 1903-40)는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나 정치범으로 구속되기 전까지 청년시절 목수일을 했다. 출소 후 알제리 부대에 강제 징병된 그는 신병을 괴롭히는 관행에 대해 침묵시위를 함으로써 병역이 면제되었고 어머니가 있는 고향 리옹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직업을 갖지 않고 기행을 일삼다가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이때부터 그는 실어증에 빠진다. 어느날 그는 정신병원의 큰방 벽면에 그림을 한점 그린다. 미술재료가 아닌 나뭇잎으로 즙을 내 배경을 칠하고, 돌조각으로 긁어 그린 작품이었다. 병원에서는 그때부터 그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그가 남긴 그림들에 등장하는 사람 대부분은 동그랗게 눈을 뜬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여성 같다가도 한참을 보면 남성 같고 결국엔 그림 속 모든 사람이 ‘실뱅 푸스코’ 본인같이 느껴진다.
특유의 우울함과 이상한 행동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했던 실뱅 푸스코, 그의 사인은 굶주림이었다.(1940년, 정신병원들에 배급돼야 할 식량이 통제되는 바람에 몇천명의 환자들이 기아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를 화가 장 뒤뷔페(Jean Dubuffet)의 책 『아웃사이더 아트』에서 처음 만났다. 장 뒤 뷔페 역시 포도주 상인으로 일하다가 40대 초반에 화가의 꿈을 꾸기 시작한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이다. 그는 1945년 ‘아트 브뤼’라는 용어를 만들고, 아동, 정신병자, 노숙자 중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된 전시회를 열고 『아웃사이더 아트』에 그들을 소개했다. 그는 말한다.
“이 세상 사람이 모두 화가이다. 손에 잡히는 것 아무것에나 연필로 그림 그리는 것은, 말하는 것만큼이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뱅 푸스코를 비롯해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의 작업은 그 어떤 칭찬이나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과 고독 속에서 창작의 즐거움을 오롯이 느끼며 표현한 작품들이다. 입을 꾹 다물고 또랑또랑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림 속 여인… 할 말은 많은데 들어주는 이가 없어 외로웠던 그가 소통하고 싶어하는 열망을 그림으로 남긴 것은 아닐까?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오래전 부모님이 자주 틀던 전영록의 노래 한소절이 자꾸 떠오른다.
“나를 잊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