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고맙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줘서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좋은 음악을 듣고, 멋진 풍경을 볼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뜬금없는 메시지에 엄마는 당황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진심이었다. 고백하자면 한없이 긍정적이고 삶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는 나조차도 몇번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어!’라며 해서는 안될 말을 내뱉은 적이 있다. 고민이 너무 많아 힘들었을 때,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박스째로 쌓여 억누를 때 나는 그랬다.
독일의 아우구스트 나터러(August Natterer, 1868?1933)도 그랬던 모양이다. 한때 그는 재능있는 전기기술자였고 결혼 후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공들인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직장을 잃자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907년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고 손목에 칼을 댄다. 죽는 것은 하늘의 일일 터, 결국 그는 자살에 실패한 후 정신병원에 간다. 그때부터였다. 그에게 정신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에 대한 염원과 두려움의 반복은 수천개의 이미지가 중첩되는 시각현상을 경험하게 했고, 결국 그는 자신의 수많은 마음을 그림으로 분출한다. 여러 정신병원을 옮겨다니면서도 표현욕구는 계속되어 여러 작품을 남겼다. 정신분열증을 쉽게 풀이하자면 마음이 여러 개로 갈라지는 병일 것이다. 이 병을 앓는 사람은 존재하는 것들과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구분이 뒤엉켜버린 삶을 살아간다. 나터러에게는 종교적인 세계의 분열이 극심하게 일어났다. 그는 매순간 선과 악의 축이 뒤섞이는 환영을 경험했다. 대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눈동자를 그린 이 그림은 수없이 여러 개로 나뉜 그의 마음을 엿보는 듯하다.
러셀 크로우 주연의 영화 「뷰티플 마인드」는 실존인물인 천재 수학자 ‘내시’가 정신분열증과 싸우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내시는 수학적 능력이 뛰어났지만 사람들과의 소통능력이 없었다. 여러 현장에서 능력을 입증해 명성을 쌓아가던 그는 결국 망상으로 인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에겐 유일한 친구이자 아내인 ‘알리샤’가 늘 곁에 있었다. 그녀는 내시를 위해 헌신하고 그의 마음을 보다듬어준다. 마침내 내시는 그녀의 도움으로 노벨상을 수상하며 위기를 극복한다. 영화에선 정신분열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치료와 사랑을 받으면 극복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주지만, 동서양 모두 이러한 환자들을 꾸준히 격리한 것은 사회적 문제를 예방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나터러에게도 소울메이트가 있었다면 화가로서 당당히 세상에 입장할 수 있었을까? 애달프게도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해 여러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그는 세상을 떠났다. 마음이 여러 개인 남자, 아우구스트 나터러. 그의 그림 속에는 우리와 세상을 다르게 봤던, 그래서 더 다양한 시각의 흔적을 남긴 그의 마음이 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