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7년(영조3)~1798년(정조22).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자화(子華), 호는 존재(存齋)․계항(桂巷)․계항거사(桂巷居士). 처음에 증조부에게 수학했으나 유년기를 지난 뒤에는 자수면업(自修勉業)하였다. 어려서부터 제가서(諸家書)를 탐독해 학문적 자세를 굳힌 그는 향리의 장천재(長川齋)에 기거하면서 면학과 교화의 일익을 담당했다. 스승 윤봉구(尹鳳九)를 만나 경서․의례․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에 관한 논의를 통해 학문적 계도를 받았다. 과거에 계속 응시했으나 떨어졌고, 그 뒤 1794년 서영보(徐榮輔)의 천거로 저술과 덕행이 정조에게 알려져 선공감부봉사(繕工監副奉事), 기장․태인․옥과현감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존재집(存齋集)≫․≪사서차의(四書箚義)≫ 등이 있다. 그의 가문에 전하는 ≪삼족당가첩(三足堂家帖)≫에 <농가구장(農歌九章)>이 실려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