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1년(선조34)~1673년(현종1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효백(孝伯), 호는 만휴(萬休)․휴와(休窩). 정두경(鄭斗卿)․홍만종(洪萬宗)과 교유하였다. 1626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정묘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였다. 이듬해 반란을 음모하던 아우 임지후(任之後)와 숙부 임취정(任就正) 등이 죽음을 당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울진 산중으로 내려가 향인들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연구하였다. 그 뒤 문장이 뛰어나고 지행(至行)이 있다는 조신들의 의론으로 특채되어 1653년 장령이 되었다. 이어 종성부사․담양부사․승지․예조참의를 역임하고, 이듬해 병조․호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만휴당집(萬休堂集)≫․≪휴와야담(休窩野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