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7년(중종32)~1626년(인조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영로(靈老), 호는 송담(松潭). 1578년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벼슬이 임천군수에 이르렀다. 정유재란 때 싸우지 않고 도주하여 처형될 뻔했으나 죄를 용서받고 군량 수송의 책임을 맡았다. 이후 벼슬에 뜻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 한가로이 지내면서 선조인 송유(宋愉)의 제실 쌍청당(雙淸堂)을 중수하여 송(松)․국(菊)․매(梅)․죽(竹)을 심어 소영(嘯咏)하고, 옛 선인의 언행을 초록하여 ≪검신요결(檢身要訣)≫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