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2년(중종37)~1587년(선조2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萬竹)․만죽헌(萬竹軒). 1569년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부사․의주목사 등을 지냈다. 문장과 도덕, 그리고 기절(氣節)이 뛰어나 이이(李珥)․정철(鄭澈)로부터 지우(志友)로 인정받았다. 의주목사로 있을 때에는 정여립(鄭汝立)으로부터 탄핵을 받은 이이와 정철을 변호하는 소를 올렸다가 파직되기도 하였다. 저서로 ≪만죽헌집(萬竹軒集)≫이 있으며, 시조 2수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