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1년(인조9)~1695년(숙종21).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남계(南溪). 신흠(申欽)의 외손자이며, 김상헌(金尙憲)의 문인이다. 성균관 유생 시절에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종사를 주장, 효종의 꾸지람을 받자 과거를 포기하였다. 주로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 서인과 학문적 교유관계를 가졌으며, 예송논쟁(禮訟論爭) 과정에서 서인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이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립되자 윤증(尹拯)․최석정(崔錫鼎)․남구만(南九萬) 등과 소론의 영수가 되었으며, 1694년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소론이 정권을 잡자 좌의정에 올랐다. 성리학 이론에 밝았으며, 예학에도 해박하여 ≪남계예설(南溪禮說)≫․≪삼례의(三禮儀)≫․≪육례의집(六禮疑輯)≫ 등 여러 예학서를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