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2년(영조8)~1814년(순조14). 조선 후기의 서예가.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중운(仲雲), 호는 경산(京山). 고려 말기 이조년(李兆年)의 후손이다. 젊어서부터 쇠락해가는 가문을 일으키고자 과거에 뜻을 두고 공부하였으나 실패하고 말년에 감역(監役)을 제수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의 외가가 당대 세도가인 안동김씨 가문이어서 외숙인 김용겸(金用謙)에게서 수학하였으며 정치적으로도 노론의 견해를 지지하였다. 전학(篆學)에 뛰어났으며 음악에도 통하여 그의 퉁소는 홍대용(洪大容)의 거문고와 함께 짝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재주로 당시의 명사였던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성대중(成大中)․홍원섭(洪元燮) 등과 교유하였다. 말년에 ≪청구영언(靑丘永言)≫(연민본)을 편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