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2년(선조5)~1645년(인조2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휘세(輝世), 호는 학곡(鶴谷). 1594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서가 되었으며, 정언․부수찬을 거쳐 이조좌랑․성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병조참의가 되었으며 정사(靖社)공신에 책록, 익녕군(益寧君)에 봉해졌다. 이후에 예조판서․대제학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최명길(崔鳴吉)과 함께 화의(和議)를 주장하였다. 이듬해 소현세자(昭顯世子)가 급사하자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세자책봉을 반대하고 세손으로 적통(嫡統)을 잇도록 주장하였으나 용납되지 않았다. 저서로 ≪학곡집(鶴谷集)≫이 있다.